예술가들은 왜 미식가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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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01, 2012

글 이소영(칼럼니스트)

“당신이 먹는 것을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이 말했듯이, 좋아하는 음식에 그 사람의 성격이 반영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근래 들어 흥미롭게도 위인들의 미식 취향을 다룬 책들이 대거 출간되고 있다. <조선의 탐식가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식탁>, <모네의 그림 같은 식탁> 등을 통해 국내외 거장들이 어떤 음식을 선호했으며 그들의 업적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짚어보려 한다.


대식가이자 미식가였던 화가, 모네

모네의 수련 그림을 보고 감탄하지 않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프랑스에 간다면 꼭 들러야 할 곳 중 하나가 바로 지베르니(Giverny)다. 미술가 모네가 40여 년 동안 살면서 그림을 그린 정원이 있는 곳으로 잘 알려진 지베르니는 관광객들이 대거 방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모네가 이곳에서 성대한 만찬을 즐겼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신간 <모네의 그림 같은 식탁>(클레르 주아/아트북스)은 미술사학자인 클레르 주아가 모네의 집안이 남긴 자료를 분석해 모네가 일상에서 어떤 음식을 즐겼는지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모네와 그의 부인 알리스에게 지베르니는 테이블에 오를 과일과 채소, 오리와 물고기를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모네는 식탁에는 반드시 신선한 채소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네의 정원에서는 숙련된 정원사가 돼지감자, 그린 아티초크, 적양배추, 두루미 냉이, 쪽파, 로메인 상추 등 다채로운 채소를 가꾸었으며, 모네는 여행을 갈 때마다 직접 채소 종자와 모종을 구입해 정원사를 닦달했다고 한다. 모네는 특이하게도 후추를 좋아했는데 샐러드가 후추 범벅이라 다른 이들은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늘 식탁에는 두 접시의 샐러드가 준비되었다. 모네는 미술가에 대한 일반적 편견과는 달리 시간관념이 철저한 사람이었다. 점심 식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전 11시 30분에 먹었는데, 태양이 강하게 비추는 낮에는 그림을 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손님도 늘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아침 일찍부터 그림을 그려야 해서 오후 9시 30분이면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이다. 모네의 아름다운 작품들은 그의 부지런함 덕분에 탄생되었다. ‘아침 식사’, ‘샤이, 풀밭에서의 점심’, ‘갈레트 파이’, ‘사냥에서 잡아온 짐승들’ 등 음식과 연관된 작품을 많이 남긴 것은 그의 입맛이 까다로운 데서 연유된 것이리라.
추천의 글을 헌사한 미술랭 스타 셰프 조엘 로뷔숑(Joel Robuchon)은 자신도 지베르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모네는 스스로 요리를 하지는 않았지만 대식가이자 미식가였지요. 푸아그라는 알자스 지방산(産)을 고집했으며 페리고리 송로버섯을 최고로 쳤습니다. 생선을 좋아했고, 특히 정원의 연못에서 기르는 곤들매기를 즐겨 먹었습니다. 그의 요리 수첩은 소박하면서도 서민적이면서 맛있는 요리의 보고였지요.” 당시 모네는 파리 최고의 미술가로 추앙받았기에 많은 이들이 그의 집에 초대받고 싶어 했다. 하지만 모네는 손님 접대가 그림 그리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아무나 초대하지 않았다. 모네는 돈 많은 화상들을 초대해 지베르니에서 생산된 식자재를 총동원한 요리로 극진하게 대접함으로써 계속해서 작품을 비싼 값에 팔 수 있었다. 모네의 생일에는 친지가 직접 잡은 멧도요 구이를 먹었는데 그가 가장 좋아한 것은 2주 동안 숙성한 멧도요였다. 또 곤들매기나 가자미 요리, 달콤한 그린빛이 도는 베르베르 케이크 역시 매년 빠지지 않은 요리였다. 책은 이렇듯 지베르니에서 보낸 모네의 맛있는 일상과 작품 활동의 연관성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가 현실에서 모네와 같은 풍성한 식탁을 즐기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이지만 그가 특별한 날에는 뵈브 클리코 샴페인을 즐겨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안심이 된다. 우리도 분위기 잡고 싶은 날에는 옐로 레이블의 샴페인을 터뜨릴 수 있지 않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채식주의자였을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식탁>(와타나베 레이코/시그마북스)과 <다빈치의 부엌>(데이브 드윗/빅하우스) 역시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기록을 통해 일생과 연결된 미식 취향에 대해 탐구하고 있어 흥미롭다. 두 권의 책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것 중 주목할 만한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채식주의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식탁>과 달리 <다빈치의 부엌>에서는 그가 채식주의자였다고 단언해 눈길을 끈다. “인도의 구자라트 사람들은 피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살아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해치지 못하게 합니다. 그들은 쌀과 우유 그리고 다른 움직이지 않는 것만 먹으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말이지요.” 여행자 안드레아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다빈치가 초기에는 고기를 섭취했지만 말년에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실제로 다빈치가 남긴 샐러드 드레싱 레시피에 의하면, 파슬리, 스피어민트, 타임, 올리브유, 와인 식초, 소금과 새로 간 후추를 넣으면 그가 즐겨 먹던 샐러드를 완성할 수 있다. 저자는 다빈치가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채식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신성모독으로 몰릴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이를 지속한 것은 신에 대한 갈구보다는 생명에 대한 존중을 더욱 중시하는 철학자였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반면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식탁>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요리들을 설명한 부분이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이 된 유월절 식사와 관련된 기록을 찾아냈고 이를 체험하기까지 했다. 유월절(逾越節)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일을 기념하는 유대교의 축제이다.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은 ‘최후의 만찬’의 복원을 몇 해 전에 성공적으로 마쳤다. 저자는 복원된 그림 속 그리스도 앞의 접시에 있는 생선의 종류를 알기 위해 <요리대백과사전>까지 뒤졌다. 그런 끝에 생선은 토막 낸 뱀장어인 것으로 결론 내렸다. 뱀장어는 ‘최후의 만찬’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유대인은 비늘이 없는 생선은 먹지 않는다고 하니 가장 근접한 해답인 셈이다. 또 다빈치의 수첩에는 뱀장어를 구입한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하다. 작품 속 빵도 효모를 넣지 않는 유월절 빵이 아니라 평소 자신이 먹던 것을 그려 넣었다. ‘최후의 만찬’을 위해 다빈치 자신의 만찬을 그린 셈이다. 또 다른 접시에는 작은 생선들이 올려져 있는데 이것은 갈릴리호의 정어리라고 판단된다.

파블로 피카소의 대단한 미식 취향

미술가 피카소 역시 의외로 음식과 관련된 작품을 많이 남겼다. <피카소의 맛있는 식탁>(에르민 에르셰/예담)에 의하면 피카소는 식사를 하다가 그림을 그렸으며, 커피를 마시다가 냅킨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또 그가 즐기던 음식들을 도자기 작품으로 남겼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그린피스를 곁들인 비둘기 구이’(1912년)를 보라. 입체파의 특성이 잘 드러나 있는 이 회화 작품은 미술가로서 피카소가 실제 자신의 식탁에서 비둘기 구이를 먹을 수 있을 만큼 성공한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피카소는 이 요리를 많이 좋아했던지, 1961년에는 테린 틀 위에 잘라서 올려놓은 아상블라주(assemblage) 기법의 동명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책에는 요리의 레시피가 게재되어 있는데, 비둘기 4마리를 스튜 냄비에 구운 후, 그린피스, 양파, 돼지 비계 조각, 양상추, 각설탕, 소금과 후추를 넣고 끓이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요리이다. 피카소는 젊은 연인 프랑수아즈 질로와 열애 중일 때는 매일 후안만에 있는 레스토랑 ‘셰 마르셀’에서 점심을 먹었다. 피카소는 이곳에서 영감을 얻어 몇 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낙지 두 마리와 오징어 두 마리가 있는 정물’(1946년), ‘성게를 먹는 사람’(1946년) 등이 바로 그것이다. 피카소는 한결같은 열정으로 인생과 요리를 즐겼으며, 이것이 그의 작품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대가의 식탁을 탐하다>(박은주/미래인)는 명사 13명의 솔 푸드(soul food)를 소개하고 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나폴레옹은 평소 닭 요리를 즐기지 않았으나, 1800년 이탈리아 마렝고에서 승리를 거두었을 때 먹은 치킨 마렝고를 최고의 음식으로 꼽았다. 전투 전에는 금식한 탓에 배고파하는 그에게 전장의 요리사가 대접한 요리는 토마토와 달걀, 바닷가재와 암탉, 브랜디를 넣은 치킨 마렝고였던 것이다. 오페라 <윌리엄 텔>, <세비야의 이발사>를 작곡한 음악가 로시니는 음식을 더 많이 먹기 위해 은퇴했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로 대단한 미식가였다. 그가 가장 편애한 요리는 송로버섯이었는데, ‘포치드 에그 알라 로시니’, ‘치킨 알라 로시니’ 등 송로버섯 요리에 그의 이름이 붙었을 정도다. 심지어 2010년에는 조아치노 로시니 미식국제경연대회가 열렸다. 요리에 로시니의 음악을 가미하고 변주해 실력을 겨루고 1천유로의 상금이 주어지는 대회라니, 그의 식성이 아직도 존경받고 있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조선시대 왕들의 예사롭지 않은 입맛

유럽을 대표하는 명사들의 식성을 파악했으니 이제 조선시대로 떠나보자. 조선의 왕과 관료들은 어떤 음식을 선호했을까? <조선의 탐식가들>(김정호/따비)은 중국과 일본에서 가수저라(카스텔라)와 승기악이(쓰키야끼)가 수입되어 상에 오르던 조선시대 미식가들의 까다로운 식성을 소개하고 있다. 여러 진귀한 음식을 소개했지만 그중 특이한 것은 요즘 우리나라에서 맛볼 수 없는 순채를 학식 있는 선비들이 찬미했다는 점이다. 순채(蓴菜)는 중국이 원산지인 수련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중국 진나라의 장한이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고향의 순챗국과 농어회가 생각나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실학자 성호 이익도 <성호사설>에서 순채를 ‘신선의 취미’로 소개하고 있으며, 권력욕이 강했던 서거정 역시 순채를 주제로 한 시를 여러 편 남겼다. 여러 기록을 볼 때 순채는 맛보다는 이에 담긴 정신을 스스로 예찬하기 위해 왕과 관료들이 즐겨 먹은 것으로 여겨진다. 요즘 순채가 우리나라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순채를 좋아한 일본인들이 대량으로 가지고 가버렸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 다시 순채가 살아나는가 했더니 산업화 과정에서 습지가 없어지면서 멸종 위기 식물종으로 분류된 상태이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순채를 준사이(환상의 풀)라고 부르며 샐러드, 튀김 등으로 다양하게 즐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순채를 맛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먹는 것과 성욕은 사람의 본성이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조선 최초의 음식 칼럼니스트로서 음식·식자재 품평기 <도문대작>을 썼다. 그는 물산이 풍부한 고을에 부임하려고 로비를 벌였고,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식탐은 많았으나 벼슬로 돈을 모으려는 욕심은 없어서 항상 생활고에 허덕였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던 유배지에서 지난날 맛있는 음식을 먹던 추억을 더듬으며 쓴 <도문대작>에서 병과 음식(떡) 11종류, 채소와 해조류 21종류, 어패류 39종류 등을 소개하고 있다. 별미 음식으로는 곰 발바닥, 표범 태아, 사슴 혀, 사슴 꼬리를 다뤘다. 사슴 꼬리, 즉 녹미는 연산군과 영조가 특히 좋아했다는 음식이다. <왕의 밥상>(함규진/21세기북스)을 보면 조선시대 왕들이 사슴 꼬리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사슴 꼬리와 사슴 혀를 계속 올려 보내도록 생산지 고을에 급히 글을 보내라.” 연산군 이융 시대의 실록은 왕의 식탐으로 얼룩져 있다. 연산군의 이복동생으로 왕이 된 중종 역시 사슴 꼬리, 사슴 혀, 사슴의 태아 등 사슴 요리에 푹 빠져 있었다. 흉년이 들어 나라가 어려울뿐더러 임신한 사슴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는 일은 차마 못할 일이라는 의견이 계속 올라왔으나 중종은 조상에 대한 예의를 들먹이며 진상을 그대로 유지했다. 백성들의 원성을 듣든 말든 사슴 요리가 꼭 먹고 싶었던 것이다. “반찬 중에서 사슴 꼬리만 손을 댈 수 있다.” 79세의 영조는 고령임에도 사슴 요리에 집착했다. 성군도 폭군도 모두 사슴 꼬리 요리에 매료되어 있었다고 하니,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영화 <가비>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던 고종의 커피 예찬은 역사적 사실이다. 1896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서 생활할 때 조선 최초로 커피를 마신 고종은 그 맛에 반한 나머지 경운궁으로 환궁한 후 궁에 ‘정관헌’이라는 카페를 차리고 지인들과 커피를 마시곤 했다. 하지만 1989년에 그토록 좋아하던 커피를 마시고 죽을 뻔한 사건이 일어나자 대단히 놀라게 된다. 하지만 불운은 이에 그치지 않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식혜를 즐겨 마셨던 고종은 급사하기에 이른다. 구체적 증거는 없으나 고종의 시신이 검게 변하고 터질 듯 부풀었다는 점, 식혜를 담당했던 시녀가 의문사했다는 점이 아직도 의혹으로 남아 있다. 이외에 책으로 지적 허기를 채우고 싶은 이들에게는 <바나나 키친>(요시모토 바나나/민음사), <대통령의 맛집>(강대석, 이춘성, 최영기/21세기북스), <맛, 예술로 버무리다>(쉬레이/시그마북스) 등을 추천한다. 특히 일본뿐 아니라 한국, 중국, 브라질, 태국 등 세계의 음식을 일상의 테이블에서 탐닉하는 일본의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에세이 <바나나 키친>은 배고플 때 읽으면 절대 안 된다. 배고픔이 더욱 심해질 테니 말이다. 다채로운 요리가 등장하는 일화를 소개하다 보니 자꾸만 무언가 먹고 싶어진다. 오늘은 어떤 요리를 해 먹을까? 이런 소소한 고민이야말로 동서고금,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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