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집에서 예술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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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 2011

에디터 배미진 | photographed by park gun zoo

지난 9월 루이 비통 아일랜드 메종이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 샌즈에 개장했다. 드라마틱한 구조로 완성된 이 아름다운 메종의 오픈을 축하하는 오프닝전(展)에 국내 작가 3명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여행자의 집’이라는 주제로 완성한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에 개장한 루이 비통의 아일랜드 메종. 건축가 모세 사프디(Moshe Safdie)가 설계한 유리와 철제, 크리스털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파빌리온은 항해에서 영감을 받아 바다에 떠 있는 요트의 닻을 연상케 한다. 동남아시아의 첫 번째 루이 비통 메종이자 전 세계적으로는 12번째인 루이 비통 아일랜드 메종은 매장 공간 안에 예술과 문화적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루이 비통의 회장이자 CEO인 이브 카셀(Yves Carcelle)은 “럭셔리와 예술은 둘 다 열정과 감성을 표현하는 것이며 방문객들은 루이 비통에 쇼핑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성을 경험하기 위해 온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예술적인 면에 열정적인 면모를 보인 루이 비통의 행보는 이번 메종 오픈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마리나 베이 샌즈 쇼핑몰과 루이 비통 아일랜드를 이어주는 물밑 터널에 ‘에스파스’라는 전시장을 만들어 ‘섬’이라는 주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10인의 아티스트의 작품을 전시한 것. 새로운 메종의 오픈을 축하하기 위해 이 공간의 가장 큰 특징인 ‘섬’을 주제로 한 ‘제품’이 아닌, ‘작품’을 선보이는 것은 루이 비통이 추구하는 예술가적 정신과 현대미술에 대한 브랜드의 열정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 전시에는 안식처, 위안, 피난처, 유토피아, 연결 등 아일랜드와 연관된 다양한 테마와 콘셉트가 반영되어 있는데 그중 국내 작가 3인이 참여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이 한국 아티스트들이 특별한 것은 루이 비통 코리아의 초청이 아닌, 홍콩 아트 페어에 출품한 작품들이 국적과 외부적인 요소와는 전혀 관계없이 ‘작품의 가치’만으로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산을 붉은색으로 표현한 이세현 작가의 작품은 심리적으로 강렬한 느낌을 준다. 작품 속에서 우울한 공간을 상징하는 바다로 둘러 싸여 있는 붉은 산은 과거 한때 머물렀던 아늑한 장소의 느낌, 혹은 언젠가 미래에 찾아가게 될 유토피아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심리적으로 강렬하며 이중적인 괴리를 나타나는 붉은색은 이세현 작가의 시그너처로, 드라마틱한 국내의 정치적 상황을 의미한다. LED를 활용해 빛을 다양하게 표현한 박진원 작가의 작품은 새벽 동트기 전 하늘이 점차 밝아오며 부드러운 빛으로 번지는 상황에서 시작해, 다시 캔버스 전체로 퍼져나가 배경과 전경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작품 속에 등장한 소나무는 생명의 힘과 장수, 힘의 상징이며 빛의 전환 효과는 시간의 경과를 암시한다. 삶을 완벽히 즐기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표현하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 새로운 루이 비통 메종의 환경적인 요소와 가장 잘 어우러진 작품인 류호열 작가의 디지털 애니메이션 <바다(Meer)>는 모든 섬의 경계를 규정짓는 깊고 열려 있는 무한한 바다와 변화무쌍함, 힘과 장엄함을 보여준다. 바다의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 포착한 드라마틱한 순간과 자연적인 요소에 지배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담고 있으며 태양 빛이 구름에 의해 변화하고, 파도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따라 빛과 구름이 변화하는 유기적인 상황을 포착했다. 이 작가들의 전시가 더욱 가치를 발하는 이유는 이번 루이 비통의 전시를 위해 새롭게 작품을 제작한 것이 아닌, 작가 본연의 아이덴티티를 지닌 기존 작품을 그대로 전시했기 때문이다. 루이 비통은 이 전시를 통해 브랜드의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예술에 대한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예술과 작가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면, 명품 브랜드의 예술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후원은 국내 작가들의 작품 활동을 더욱 왕성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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