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워크로 재탄생한 자동차의 과거와 현재,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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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03, 2014

글 이소영(<사진 미술에 중독되다>, <서울, 그 카페 좋더라>의 저자>)

자동차에서 영감을 얻는 국내외 예술가들의 작품 세계를 만나보자. 사실 자동차도 어찌 보면 하나의 작품이기에 예술 작품에서 탄생한 또 다른 아트워크는 다채로울 수밖에 없다. 브랜드의 정신을 작품으로 승화하는 게리 유다, 일본의 풍속화인 우키요에를 연상시키는 작품을 만드는 나카무라 데쓰야, 슈퍼 카를 조각으로 표현하는 권오상 등의 작품은 자동차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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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작품으로 재탄생한 자동차

평범한 사물에서 비범함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결코 아티스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거리에 무분별하게 주차된 자동차는 그저 골칫거리지만, 미술가들은 자동차에서 빛나는 영감을 얻어 작품을 만든다. 먼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각가 중 한 명인 권오상 작가의 작품부터 감상해보자. 공간 사옥을 개조해 최근 오픈한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에는 그의 대형 브론즈 자동차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조각 시리즈 ‘데오도란트 타입’으로 알려진 권오상 작가의 ‘더 스컬프처’ 시리즈 중 하나인 ‘The Sculpture 2’다. 이 작품은 발상부터 의미심장하다. 권오상 작가는 조각 작품은 무겁다는 고정관념에 도전하기 위해 스티로폼의 일종인 아이소핑크로 만든 조형물에 사진을 붙여 사진 조각 시리즈 ‘데오도란트 타입’을 만들었다. 그의 사진 조각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많은 인기를 누리는 작품이 되었다. 연이어 가장 조각다운 조각을 만들기 위해 무거운 재료인 청동으로 작품을 만들고 이를 ‘더 스컬프처’ 연작으로 명명했다. 그리하여 권오상 작가의 ‘데오도란트 타입’은 한두 명이 거뜬히 들 수 있지만, ‘더 스컬프처’ 시리즈는 운반 기구가 필요하게 되었다.
“관람자들에게 ‘정물 조각’으로 인지되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처음에는 청동으로 화장품, 휴대폰 등으로 만들어보았는데, 결국 가장 현대적인 오브제인 자동차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자동차가 아니라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혹은 엔초 페라리 같은 슈퍼 카를 만들게 되었지요.” 권오상 작가는 슈퍼 카는 일종의 현대미술과 같다고 말한다. 1천 마력의 엔진 성능을 다 사용해볼 수도 없으며, 실내는 좁고 편의 시설도 전혀 없는데 사람들이 열광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가의 유명한 현대미술품이라 해도 사실 실용성은 전혀 없다는 작가의 비유가 재미있다. 작가는 자동차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드는 미술가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그와 같이 자동차를 조각한 사람은 없다. 권오상 작가는 이외에 두카티 오토바이를 조각으로 만든 ‘토르소’와 잡지에서 잘라낸 자동차 사진들을 촬영한 ‘더 플랫’ 시리즈의 ‘로터스 1’ 등을 선보였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작가는 실제 슈퍼 카를 보지 않았고,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작가는 인터넷으로 사진을 보고 작품을 만들었고, 이런 것이 바로 현대사회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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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용 자동차와 클래식 카에서 영감을 받다

권오상 작가가 슈퍼 카에서 영감을 얻었다면 일본의 나카무라 데쓰야는 경주용 자동차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청담아트센터의 장승현 디렉터는 나카무라 데쓰야의 작품이 일본 풍속화 우키요에의 대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부악삼십육경(富嶽三十六景)’ 시리즈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나카무라 데쓰야의 자동차 조형물이 변화무쌍한 색감과 문양으로 일본 전통 이미지를 보여주며, 과거에서 현재로 빠른 시간 여행을 유도한다는 점이 호쿠사이의 작품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부악삼십육경’에서 볼 수 있는 파도와 배 등의 속도감은 자동차의 그것과 대단히 비슷하다. ‘부악삼십육경’은 후지산 인근의 36개 풍경을 표현한 판화 작품으로, 유럽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장승현 디렉터는 복잡한 물질로 이루어진 자동차가 연료를 태워가며 속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은 인간 정신의 힘이 서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술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창작하는 순간 작품이 물질성을 초월한 존재가 되는 것처럼, 자동차 역시 인간에게 부여받은 정신으로 첨단 기술을 뛰어넘어 인간과 서로 교감을 나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자동차의 존재 의미를 고찰하며, 예술가의 심성으로 현대문명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적극적으로 제공한다. 나카무라 데쓰야의 조형물은 5m가 넘는데, 미끄러질 듯한 유선형의 형태와 매끈한 금속성의 표면은 정지된 조각에 속도감을 부여하는 요인이다. BSSM 백순실미술관의 김은영 큐레이터는 속도를 낼 수 없는 조형물에 이미지의 속도를 오버랩시켜 가장 빠른 속도의 사물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더욱 속도감 있어 보이는 형태로 조형물을 업그레이드하는 나카무라 데쓰야는 현대인의 감각을 자극하는 21세기의 이미지와 경쟁하고 싶어 한다. 더욱 빠르게, 가장 빠른 것을 욕망하는 인간 문명의 모습을 상징화한 것이다. 한편 클래식 카에서 영감을 얻는 이채일 작가의 작품은 자동차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재구성해 실재처럼 보이게 만든 포토리얼리즘 형태의 유화다. 텅 빈 공간을 가득 채운 클래식 카는 제목에서부터 고가의 브랜드를 노출하며 보는 이들을 유혹한다. 첨단 기술의 상징인 자동차를 그려, 작가 자신이기도 한 21세기 젊은이들의 소유욕을 형상화하는 것이다.

메르세데스-벤츠, 그리고 현대자동차

‘자동차’라는 존재 자체를 넘어 브랜드에서 영감을 얻는 아티스트도 있다. 설치미술가 게리 유다와 사진작가 김용호가 바로 그들이다. 게리 유다는 영국 웨스트서식스에서 개최되는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Goodwood Festival of Speed)’에서 대형 조형물을 해마다 설치한다. 이 페스티벌은 전 세계에서 엄청난 인파가 몰리기에 자동차 브랜드들이 대거 참여하며 신차 론칭 이벤트의 장으로 불린다. 게리 유다는 이 페스티벌의 공식 아티스트로 매년 메인 자동차 브랜드의 상징성을 형상화한 작품을 선보인다. 2012년에는 로터스, 2013년에는 포르쉐 911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전시했고, 올해는 메르세데스-벤츠가 모터 스포츠에 참가한 지 1백20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조형물을 설치했다. 고풍스러운 굿우드 하우스 지붕 위로 1백60톤의 철제 곡선이 드리워져,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에서 우승한 1934년형 W25의 레플리카와 F1 드라이버 루이스 해밀턴이 몰았던 2013년형 W04가 위에 올라가 있는 형상이라 감탄을 자아냈다. 그의 작품은 자동차에서 영감을 얻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작품인 동시에 자동차를 가장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승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5년에는 과연 어떤 브랜드의 자동차 조형물이 설치될지 궁금해진다.
<브릴리언트 마스터피스>전에서 선보인 사진작가 김용호의 작품은 상업 사진과 예술의 경계가 유지되는 동시에 해체되었다는 평을 받았다. “서비스센터, 남양연구소, 아산 공장, 울산 공장에 이르기까지 촬영하며 현대자동차의 모든 시간을 담아내고 기록한 결과물입니다. 단순한 자동차가 아닌, 현대자동차의 기존 이미지 이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새로운 시각으로 현대자동차를 포착했습니다.” 초기에는 패션 사진과 광고 사진으로 유명세를 떨친 김용호 작가는 점차 순수 사진과 동영상, 설치 작품에 이르기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며 커머셜과 아트의 정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미술 평론가 이건수는 김용호의 작품은 처음부터 상업적 쓰임을 초월하려는 의도로 창작되었다고 말한다. 정지된 자동차의 정제된 라인이 만든 기하학적인 추상과 충격 테스트를 위해 수많은 자동차가 충돌하면서 남긴 벽과 바닥의 상처는 표현주의 그 자체다. 누가 이 아름다운 추상화를 충돌 테스트의 흔적이라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의 사진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컴퍼니로 자리 잡은 현대자동차의 품격 있는 포트레이트가 담겨 있다. 게리 유다가 명품 브랜드의 위엄을 과시하는 규모 큰 조형물을 만들어 브랜드 파워를 과시한다면, 김용호는 자동차의 역사와 속도를 사진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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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자동차를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며 애착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다. 김명곤 작가도 그런 애틋한 감정을 작품에 투영하는 것이 분명한 듯 보인다. 그는 자동차에 생명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믿는다. 주로 꽃과 식물의 이미지를 자동차와 함께 표현하는 작가는 생명의 의미를 통해 인간애와 긍정적인 에너지를 선사한다. 자동차를 기계가 아닌 인간애의 상징으로 보며,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자동차와 인간을 연결해 그 안에 꿈이 있음을 보여준다. 교통 체증을 묘사한 최근작에서도 일상에 충실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현대인의 힘찬 기운과 희망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미술가로서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문화 전달자로서의 책임감과 치료사로서의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업은 주로 즐거운 상상에서 시작됩니다. 여러 곳의 풍경을 하나로 만들고 그곳에 자동차와 꽃을 올려놓습니다. 단조로운 회색 거리에 컬러를 가미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지요.”

작가는 현실의 풍경을 낯설게 해 상상 속의 거리와 풍경으로 바꾸는 데 매력을 느낀다. 존재하지 않는 풍경으로 낯설지 않은 내면의 세계를 만드는 것을 재미있어한다. 쇠라의 작품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작가는, 조각의 편린들이 모여 이루어진 캔버스가 쇠라의 색점과도 같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점은 매일 하루를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담아 작품을 만든다는 사실일 것이다. 꿈을 싣고 달리는 자동차 그림으로 행복을 선사하는 것이 작가의 바람이다. 한편 홍원석 작가는 마치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과 같이 별들 사이를 헤매는 야간 운전 시리즈를 선보인다. 앰뷸런스 운전 경력이 있는 작가는 야간 운전이 녹록지 않은 삶의 어려움이 응축된 현장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홍 작가의 그림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서글프고 막막해진다. 대리 운전, 트럭 운전, 총알 택시로 대변되는 야간 운전자의 어려운 현실을 초현실적이면서도 몽상적인 야경으로 표현했다. 색감이 밝지만 헤드라이트 불빛은 왠지 쓸쓸해 보인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에는 싱크홀이 등장하고, 때로는 번개가 치고, 우주선이 자동차를 쫓아가기도 한다. 운전대를 잡으면 누구보다 고독해지는 현대인의 모습은 초현실적인 체험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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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 여신 조각을 능가하다

박은영 큐레이터는 장재록, 정명국 작가처럼 구체적인 자동차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거나 프로타주(frottage)한 작품들은 감상자로 하여금 ‘자동차’에 얽힌 수많은 상징적, 문화적 상상을 축소할 수도 있다고 평한다. 오히려 정혜련 작가처럼 빛과 움직임을 소재로 한 조각 설치 작품이나 에드 루샤의 작품과 같이 미국 특유의 로드무비를 연상시키는, 자동차, 에너지, 길, 자본주의 등의 요소로 이루어진 작품이 21세기 자동차에 대한 상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 모른다. 자동차 디자이너 출신인 정주현 작가의 ‘표면’과 ‘파티션’ 연작 역시 자동차 파편에서 출발한 순수 형태의 볼륨과 색채를 보여주며 호기심을 자아낸다. “폭음을 내며 질주하는 경주용 자동차가 사모트라케의 니케 여신 조각보다 더 아름답다.” 1백 년 전 이탈리아의 시인 필리포 마리네티가 예찬한 것처럼, 2014년의 자동차 라인은 더욱 수려하고 컬러는 관능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세기의 조각가 로댕이 살아 있다면 그 역시 자동차에서 영감을 받지 않았을까? 아티스트의 시선으로 차를 바라본다면, 당장 운전대를 잡는 마음가짐부터 달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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