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과 뉴욕에 갤러리를 오픈했던 아라리오갤러리가 이번에는 중국 자본주의의 메카 상하이에 도전장을 던졌다. 시대를 앞서나가는 심미안으로 아시아 미술계를 리드하고 있는 아라리오 김창일 회장에게 직접 듣는 중국 미술 시장의 변화.
10년 전 베이징에 진출한 아라리오갤러리가 지난해 9월 상하이로 이관한 데 이어 올여름에는 같은 지구 내에서 좀 더 넓은 단독 건물로 확장 이전했다. 비즈니스맨이자 갤러리스트, 세계적인 컬렉터, 그리고 ‘씨킴(Ci Kim)’이라는 예명의 아티스트로도 활동하는 김창일 회장이 이끄는 갤러리의 행보인 만큼 ‘왜?’라는 궁금증이 치솟는다. “사업가든 미술가든 중요한 공통점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심미안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현대미술의 중심이 상하이로 이동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2005년에는 베이징, 2007년에는 뉴욕에 진출했고, 이제 다시 그 변화의 물결이 상하이로 옮겨 가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죠.”
2005년 당시 김창일 회장은 아시아의 중요 도시인 베이징이 세계 미술계의 흐름에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폐쇄적이고 경직된 사회 분위기가 아쉬웠지만 앞으로 개방되면 파워가 대단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그를 매료시킨 중국 유명 작가들이 상업 갤러리의 전속 시스템에 익숙하게 여기지 않았고, 중국(정부)과의 관계 유지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아라리오 베이징은 자체 전시를 통한 작가 프로모션보다는 전속 작가들의 미술관 전시와 해외 프로모션에 초점을 맞춰 운영했고, 결국 상하이로 기지를 옮기는 용단을 내렸다.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는 상하이의 ‘작은 유럽’으로 불리는 쉬후이 구 쉬지아후이의 문화 예술 상업 콤플렉스로 조성되고 있는 헝산팡 지구에 자리하고 있다. 갤러리 바로 인근에 시진핑 주석 부인의 단골 부티크도 위치하며, 근대 서양 문물의 영향을 받은 문인, 건축가, 예술가가 모여 있는 고급 주택지이자 프랑스 조계 지역(Old French Concession)에 속하는 매혹적인 위치도 강점이다.
젊은 컬렉터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상하이의 아트 마켓은 점진적으로 성장해나가고 있다. 특히 문화 예술의 중심으로 변모시키려는 정부의 주도 아래 예술품 보세구 출범, 황푸강 서안 개발, 아트 페어의 증가, 민영 미술관의 설립 등 변화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한동안 고민하다 오랜만에 다시 중국에 갔는데, 신진 작가들의 작품이 너무 좋아 다시 의욕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상하이는 개방적인 국제도시면서 현대미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데다, 정부 차원에서 예술 특구 발전 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우리도 웨스트번드에 창고형 갤러리를 오픈할까 생각 중입니다. 1960~70년대 뉴욕 시의 전폭적인 지원이 잭슨 폴록과 앤디 워홀을 탄생시켰듯이, 정부의 지원도 현대미술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중요 요건이 됩니다.”
그는 2007년 뉴욕에 진출하면서 아시아인으로서 아시아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면 세계 진출도 어렵겠다고 느꼈다면서 지금이야말로 큰 포트폴리오를 형성하고 있는 아시아의 중심 상하이에 진출할 적기로 본다고 설명했다. “현대미술에서는 경험만이 힘이자 돌파구가 됩니다. 때로 상처를 입어가면서 얻은 실전 경험이 지금의 아라리오를 만들었습니다. 상하이 컬렉터들이 아라리오갤러리의 진정성을 느끼게 된다면 미술 교류가 보다 활발하게 일어날 거예요.”
3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는 ‘상하이의 작은 유럽’으로 불리는 쉬후이 구 쉬지아후이의 헝산팡 지구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 그에게 ‘교류’는 핵심 키워드다. 그는 아라리오 베이징 운영 당시에는 세계 미술을 중국에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면, 상하이에서는 아라리오 소속의 아시아 작가들을 중국에 소개하는 한편 중국 작가들을 위해 해외 프로모션을 하면서 아시아 미술을 세계에 적극 알리고 싶다고 했다. “중국 미술에 대한 선입견을 가진 이들이 많고, 저 역시 고정관념이 있었죠. 이제는 엄청난 에너지를 지닌 중국 신진 작가들을 세계에 알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시아 작가들을 중국에 소개해 현대미술의 게이트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는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가 이런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교두보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래서 지난해 상하이 갤러리 개관전으로 인도의 스타 작가 수보드 굽타 개인전을 개최했고, 뒤를 이어 중국의 신진 작가 니요위, 일본 작가 고헤이 나와의 전시를 개최했다. “과거에는 중국 시장을 잘 몰랐기에 저도 인기 작가의 작품에 주로 관심을 가졌지만 이제는 니요위, 리칭 같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반해 신진 작가 위주의 전시를 하고 있어요. 요즘 중국 현지 컬렉터들도 현대미술을 보는 안목이 대단히 높아져 자국 작품 선호도가 점차 무너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또 돈에 대한 욕심으로 무리하게 작품을 남발하고 판매에만 신경 쓰는 일부 작가들이 몰락할 가능성도 있고요.” 1989년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의 문을 열면서 데이미언 허스트의 마스터피스 ‘찬가’와 ‘체러티’를 설치하는, 우리나라 예술계에서 보기 드문 행보를 보인 김 회장. 그는 자신이 1981년 LA 현대미술관에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자신은 결코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아 우리나라 땅에 아름다운 미술관을 건립하는 꿈을 갖게 됐다는 것. 그렇게 운명처럼 예술계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도 많은 고뇌와 번민을 거쳤다. 그리고 이제는 아시아 현대미술이라는 더 큰 그림을 보고 있다. “높은 산을 오르려면 인내와 고통이 따르겠지요. 그런데 지금은 앞으로 나아갈 때라는 확신이 듭니다. 모름지기 예술은 10년이 아니라 1백 년 뒤를 바라봐야 하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