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삼국지>의 장대하고 웅대한 스토리에 빠져든 적이 한번 정도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필자는 삼국지에서 경험한 경이로움과 감동을 애플, 구글, MS의 치열한 경쟁에서 느끼고 있다. 애플, 구글, MS의 IT 삼국지가 재미있는 것은 소설 삼국지처럼 세 회사가 얽히고설킨 복잡한 애증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설 삼국지보다 애플, 구글, MS가 우리에게 훨씬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애플, 구글, MS의 경쟁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삶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IT 삼국지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귀중한 통찰력을 선사한다. 그럼 30여 년을 이어온 IT 삼국지의 어제, 오늘 그리고 미래 속으로 들어가보자.
IT 삼국지 중 가장 먼저 성공한 기업은 애플이다. 1976년 차고에서 스티브 잡스(SteveJobs)와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이 창업한 애플은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활짝 열며 폭발적인 성공을 거둔다. 1980년 애플의 주식이 상장된 첫날 스티브 잡스는 24살의 나이에 2억1천7백50만 달러를 보유한 억만장자가 되었고, 미국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애플의 놀라운 성공 신화는 스티브 잡스와 동갑내기인 빌 게이츠(William H.Gates)에 의해 무너진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처음 만난 것은 애플 2 컴퓨터에 구동되는 프로그램 언어인 베이직을 수정해주면서부터다. 아웃소싱으로 시작한 둘의 관계였지만 빌 게이츠는 미래를 내다보는 뛰어난 직관력으로 애플을 죽음 직전으로까지 몰고 간다.빌 게이츠는 하드웨어 기술이 결국 평준화될 것이라면서 소프트웨어 개발에 올인한다. IBM이 보급형 PC를 개발하면서 운영 체제를 공급해줄 업체를 물색하자 빌 게이츠는 기막힌 협상력을 발휘해 IBM과 도스(DOS)를 비독점적으로 제공한다는 계약을 맺는다. 이는 나중에 수천 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계약이라고 할 정도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기록된다. 1980년도만 해도 애플의 매출은 IBM의 2백 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IBM이 PC를 시판하자 경이로운 판매량을 보이며 승승장구했고, 많은 업체가 IBM-PC 연합군에 속속 합류하며 애플을 압박했다. 다행히 애플에는 그래픽 기반의 운영 체제로 무장한 매킨토시가 있었기 때문에 텍스트 기반의 도스를 상대로 선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IBM-PC 호환용으로 윈도우 95를 내놓으면서 매킨토시만의 장점도 사라져 애플은 도산 위기에 내몰렸다. 죽음 직전에서 애플을 살린 건 아이러니하게도 MS였다. 스티브 잡스의 요청에 따라 MS는 애플에 1억5천만 달러를 투자하고 킬러 소프트웨어인 MS 오피스를 지속적으로 매킨토시에 공급한다는 계약을 맺는다. 이는 IT 황제 MS가 애플의 마지막 숨통은 끊지 않겠다는 교시를 내리는 것과 같았다. 발표 당일 애플의 주식이 33%나 상승해 애플은 겨우 숨 돌릴 시간을 갖게 된다.
1997년까지만 해도 MS는 IT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무소불위의 황제였고, 그들의 권세는 영원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불과 1년 후 MS를 위협할 회사가 탄생했으니, 그것이 바로 구
글이다. 1998년 빌 게이츠는 <뉴요커>지와의 대담에서 “누군가가 차고에서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개발하고 있지 않을까 두렵군요”라고 밝힌 적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 1998년 차고에서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이 구글을 창업하게 된다. 2003년 획기적인 기술로 무장한 구글이 검색 엔진 시장을 장악해 가자 정작 빌 게이츠는 구글 창업자들이 록 스타처럼 행동하기를 원한다면서 그들이 2~3년 안에 회사를 그만두게 될것이라며 무시한다. 빌 게이츠가 오판하는 동안 구글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장에 진출할 것을 예상하고 치밀하게 일전을 준비한다. 실제 2005년 2월 1일, MS가 검색 시장 진출을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과의 운영 체제 경쟁이나 넷스케이프와의 브라우저 경쟁에서 보듯이 비록 처음에는 시장을 주도하는 1등 업체보다 제품 수준이 형편없지만 강력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버전업을 진행하면서 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시장을 장악해간다. MS의 강점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꾸준히 시장점유율을 올리는 데 있다. 그런데 구글과의 검색 전쟁에서는 과거와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였다. MS가 자체적으로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기 전에는 자사의 포털사이트인 MSN에서 외주 형태로 검색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었는데 16.5%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그런데 MS가 자체 검색 엔진을 장착한 지 1년 4개월 후에는 오히려 점유율이 12.9%로 하락한다. 반면에 34.7%의 시장점유율을 가진 구글은 44%로 상승한다. 2007년 1월 구글이 47%를 기록한 데 비해서 MS는 10.6%로 다시 추락한다. MS는 2008년 2월 시장점유율이 한 자리수로 떨어지자 기업 역사상 최초로 채권까지 발행하면서 야후를 4백46억 달러에 구입하려고 한다. 구글을 타도한다는 비장한 각오였지만 구글을 상대로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경쟁할 수 없으니 거액을 들여서라도 야후의 힘을 빌리겠다는 속셈을 만천하에 광고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MS의 절대 왕권이 구글에 의해서 균열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애플에 의해서 완전히 무너지기에 이른다. 스티브 잡스는 MS의 제휴와 강력한 구조 조정으로 회사에 돌아온 지 1년 만에적자투성이의 회사를 흑자로 돌려놓는다. 1999년에는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중무장한 일체형 컴퓨터 아이맥을 선보여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아이맥은 발매 6주 만에 30만 대, 1년 동안 2백만 대나 판매된다. 빌 게이츠는 아이맥이 색깔밖에 다른 게 없다며 성공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했지만 아이맥은 6백만 대 이상 판매되며 애플의 화려한 부활을 이끈다. 애플이 다시 예전처럼 창조적이고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인 회사로 거듭난 데는 휴대용 음악기기인 아이팟이 결정적이었다. 2001년 10월 발매된 아이팟은 세계 최대의 음악 다운로드서비스인 아이튠스 뮤직 스토어와 결합해 폭발적인 성공을 거둔다. 아이팟이 인기를 끌자빌 게이츠는 이번에도 아이팟이 아이맥처럼 그 성공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지만 아이팟은 2010년까지 2억9천7백98만 대가 판매되었고, 아이튠스 뮤직 스토어는 2010년2월 판매곡 수가 10억 곡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아이팟은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방식을 변화시켰으며 음악 비즈니스의 형태를 뿌리부터 바꾸어 놓았다.MS는 애플이 휴대용 음악 시장에서 승승장구하자 준(Zune)을 발매해 맞불 작전을 펼치지만 2010년 5월을 기준으로 아이팟이 미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76%를 차지하는 동안, 단 1%에 머물 정도로 부진한성적을 보였다. 구글만으로도 골치가 아픈 MS에게는 새로운 악몽의 시작이었다.
IT 업계의 판도가 애플, 구글, MS의 천하 삼분 지계로 나뉘게 된 것은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부터다. 재미있게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천하 삼분 지계가 형성되는 모
습이 소설 삼국지와 유사하다. 소설 삼국지에서 천하 삼분 지계가 이뤄진 것은 유비와 손권이 연합을 형성해 조조의 십만 대군을 상대로 적벽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시작된다. 적벽대전과 같은 모습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 스마트폰 시장을 먼저 선점한 회사는 MS다. MS의 운영 체제를 탑재한 스마트폰이 2005년에 이미 6백만 대가 판매되었고, 한때 미국 시장에서 35%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기록한다. MS가 IT 업계에서 절대 강자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된 이유는 한번 빼앗은 시장점유율을 다른 회사에게 빼앗기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폰이 등장한 지 단 6개월 만에 MS는 애플에게 추격을 허용하고 만다. 아이폰의 성공은 애플의 노력뿐만 아니라 구글의 지원 사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이폰이 발매되기 전에는 애플과 구글의 사이가 좋았다. 에릭 슈미트(Eric Schmidt)는 구글CEO가 된 후 틈만 나면 스티브 잡스의 사무실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고, 애플의 이사로 에릭 슈미트가 선임되자 반 MS 연합을 구성했다. 애플이 아이폰을 개발할 때는 구글이 구글맵스와 각종 앱을 제작해줌으로써 측면 지원을 펼쳤다. 2007년 아이폰 발표회에서 구글의 에릭 슈미트는 직접 무대에 올라 두 회사의 긴밀함을 강조하면서 “애플과 구글이 합병하면‘APPLEGOO’라고 부르면 어떻겠냐”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애플과 구글이 연합해 아이폰을 내세워 스마트폰 시장에 진격하자 기존의 강자였던 MS는 대패를 경험하고, 스마트폰 시장에서 그 존재감 자체를 상실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적벽대전 이후 촉나라와 오나라의 연합이 깨지듯이 애플과 구글의 반 MS 연합도 해체를 맞게 된다.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내세워 스마트폰 시장 진출을 선언하자 스티브 잡스는 배신감에 치를 떤다. 애플은 검색 시장에 진출하지 않았는데 구글이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해서 아이폰을 죽이려 한다고 생각한 스티브 잡스는 이에 적개심을 숨기지 않고 구글의 모토인 ‘악해지지 마라(Don’t Be Evil)’는 헛소리리라고 비난했고 구글의 앤디 루빈 부사장은애플을 북한에 비유하며 독설을 날렸다. 구글이 애플과의 연합 전선이 무너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한 이유는 스마트폰 시장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폰 덕분에 애플이 IT 업계에서 시가 총액 1위에 오를 수 있을 만큼 스마트폰은 그자체로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게다가 스마트폰은 단순히 휴대폰 몇 대를 더 파는 상술이 아니다. 구글이 왜 ‘무료’로 안드로이드를 제조업체에 제공하는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 스마트폰의 경쟁 결과에 따라서 소프트웨어, 클라우드 컴퓨팅, 인터넷 서비스, 광고 등에 절대적인영향을 준다. 구글은 검색과 광고로 먹고사는 회사다. 아이폰에는 구글의 검색 엔진이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다. 그런데 만약 애플이 아이폰에 MS의 검색 엔진인 빙을 탑재한다면 어떻게 될까? 구글은 즉시 검색 시장에서 타격을 받고, 광고 수익에도 영향을 받게 된다. 구글안드로이드 폰에는 구글의 검색 엔진이, MS의 윈도우 폰에는 빙이 기본으로 탑재돼 있다.안드로이드 폰과 윈도우 폰의 시장점유율에 따라서 검색 엔진이 영향을 받게 되므로 두 회사모두 스마트폰 시장에 더욱 매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휴대용 기기이기 때문에 일종의 광고판 역할까지 한다.최근 다 죽었다던 맥의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이 또한 아이폰의 후광 효과 덕분이다. 스마트폰 시장을 잡으면 하나의 강력한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에 애플의 앱 스토어나 뮤직 스토어처럼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다. 이처럼 스마트폰은 IT 산업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플랫폼이므로 반지의 제왕 속 절대 반지처럼 스마트폰을 차지하는 자가 결국에는 천하 삼분 지계로 나뉜 IT 시장의 황제로 등극하게 될 것이다.
IT 삼국지는 단순히 애플, 구글, MS라는 세 기업 간의 경쟁으로 끝나지 않고 수많은 IT 기업의 흥망성쇠에도 영향을 끼친다. 삼성은 애플, 구글, MS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최대의 이익을 뽑아내고 있다. 삼성은 애플의 주요 제품에 CPU, 메모리 같은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데 2010년에만 무려 50억 달러어치의 부품을 판매했다. 2011년에는 애플이 78억 달러 상당의 부품을 구매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렇게 되면 애플은 삼성전자의 최대 고객이 된다. 삼성은 한때 스마트폰 시장의 부진으로 회사의 미래에 암운이 드리워지기도 했으나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장착한 갤럭시 S의 대성공으로 완전히 기사회생했다. 갤럭시 S는 난공 불락인 일본 시장에서도 주간 판매율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삼성은 구글과 합작해 넥서스 S를 제작할 정도로 우호 관계를 맺고 있다. 삼성이 옴니아를 출시할 당시, 스티브발머가 한국에 직접 방문할 정도로 MS와도 사이가 좋다. 삼성의 스마트 폰은 MS의 윈도우폰 중에서 대표 폰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애플, 구글, MS는 막강한 자금력과 뛰어난 기술력 그리고 훌륭한 브랜드 파워까지 갖춘 회사인 만큼 다른 기업에 대한 영향력도 날로 키워가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한 기업에 올인하거나 다른 기업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 애플, 구글, MS가 겉으로는 전쟁 수준으로 경쟁하고 있지만 이들 세 회사는 이해 관계에 따라 합종연횡하며 서로 협력하게 마련이다. IT 삼국지 시대를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는 삼성처럼 세 회사 간의 경쟁 관계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최대의 이익을 취하는 지혜를 발휘하는 회사가 결국 승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