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四季)의 매력이 흐르는 오래된 정원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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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5, 2023

글 고성연

포시즌스 호텔 교토(Four Seasons Hotel Kyoto)


‘천 년 고도’라는 수식어를 거리낌없이 드러낼 수 있을 만큼 교토는 깊이도 너비도 출중한 도시다. 유구한 역사를 품고 있고 과거에 대한 존중이 반영되지만 현대성 역시 과하지 않게, 우아하게 공존하는 세련된 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토는 반복적으로 찾는 이들이 많다. 그러다 보면 여느 여행이 그렇듯 지역을 구분 짓게 되고, 어느새 동네 각각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하나 버릴 데를 찾기는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팬데믹이 발발하기 전 철학의 길, 난젠지 등이 자리한 히가시야마 지구(district)를 아직까지는 ‘최애’로 꼽는다. 떠들썩한 인파를 피해 상대적으로 여유롭고 고요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동네를 원한다면 휴식처럼 머무르기에 안성맞춤일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여행자라면, 혹은 첫 교토행이 아니기에 한 지역에 집중하고 싶다면 단지 ‘호텔’이라 부르기에는 아쉬운, 당당히 히가시야마의 명소라 할 만한 요소를 품은 포시즌스 호텔 교토(Four Seasons Hotel Kyoto)를 기억해둘 법하다. ‘교토’와 포시즌스’라는 브랜드의 조합인 만큼 ‘품격 있는 정통 럭셔리’를 보장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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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꽃, 어서 보러 오세요, 히가시야마, 색향을 다투는 밤 벚꽃…’이라는 노랫말이 시사하듯 교토의 봄은 벚꽃 덕분에 인기가 높은데, 사실 절정이 지나고 녹음이 싱그럽게 짙어지는 초여름이나 더 차분한 가을도 아주 매력적이다. 필자는 수년 전, 어느 가을날 블루보틀 커피를 마시러 갔다가 산책을 하게 됐고, 이 고즈넉한 동네가 단번에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기요미즈데라(清水寺)가 있는 기온 지구나 덴류지(天龍寺)가 있는 아라시야마 지구의 밀도 높은 거리의 인파에 치인 다음이라 더 그랬던 것 같은데, 상대적으로 번화하지 않고 훨씬 덜 북적대는 풍경이 가을의 정취와 잘 어울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초록초록’한 기운이 넘실대는 초여름의 히가시야마 지구를 유유자적 거닐어보니, ‘교토 사계(四季)’의 또 다른 매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발에 치이도록 유적지가 많은 전통문화의 보고인 교토답게 히가시야마 역시 긴카쿠지(銀閣寺) 같은 사찰을 비롯해 명소가 산재해 있다. 하지만 귀족이나 일부 관계자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비공개 사찰도 있는데, 남예산 묘법원도 그중 하나다. 포시즌스 호텔 교토(Four Seasons Hotel Kyoto)는 바로 이 묘법원을 이웃하면서 안쪽으로 숨은 듯 절묘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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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야마산맥의 기운과 8백 년을 품은 정원의 정취
사실 필자는 호텔로 가는 길에 잠시 동네 구경을 하다가 길을 살짝 잃을 뻔했다. 시야에 묘법원 외관이 들어왔지만 호텔 간판은 찾아볼 수가 없었고 마침 휴대폰 배터리가 나가는 바람에 당황했는데, 다행히 한 소녀를 만났다. 포시즌스 호텔 교토 근처에 교토 여자중·고등학교가 자리하는데, 등굣길에 자연스레 지나치게 되는 호텔 정문 방향의 입구를 알려주면서 수줍게 미소를 띤 채 떠났다. 양쪽에서 연둣빛이 춤추는 듯한 대나무들이 늘어선 길을 지나 안쪽으로 꽤 깊숙이 들어선 이 호텔의 진면목은 정원을 따라 펼쳐져 있다. 12세기에 조성된, 그러니까 무려 8백 년 세월에 걸쳐 고유의 색을 간직해왔다는 ‘샤쿠스이엔(Shakusui-en)’ 연못 정원이다(10,000㎡ 규모). 그 자체로 ‘보물’인 만큼 포시즌스 호텔 교토는 전체적인 설계에 이 운치 있는 연못 정원을 누릴 수 있는 다양한 ‘배려’를 반영했다는 인상이 절로 든다. 상당수 객실은 연못 정원 또는 이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나무의 정기를 바로 맞대는 느낌을 자아내는 듯한 ‘뷰(view) 맛집’을 자랑한다. 또 비공개 사찰인 남예산 묘법원의 고아한 목조 지붕을 내다볼 수 있는 전망도 근사하다. 건물 자체가 높지 않기에(객실의 최고층이 4층) 이 총천연색 파노라마를 객실뿐 아니라 엘리베이터와 복도에 난 창, 야외 산책길, 정원 앞에 자리한 레스토랑(Brasserie)에서 가까이 감상할 수 있다. 전통 스키야 스타일의 티 하우스 등을 둔 후주(Fuju) 라운지에서 유자 주스나 샴페인을 홀짝이면서 보는 연못 풍경도 감탄사를 절로 부르게 한다. 일반 호텔이 아니라 장기 투숙하며 취사, 세탁 등도 가능한 레지던스 형태로 운영하는 객실도 57개 있는데, 그중에는 자신만의 작은 정원을 두는 ‘특권’을 누리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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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자적 ‘방콕’이나 단지 내 산책으로도 충만한 기쁨
‘명품’이라 수식할 만한 호텔의 요건에는 건축 설계나 요소요소 신경 쓴 디자인의 디테일, 그리고 미식과 스파 같은 시설과 흠잡을 데 없는 서비스만이 아니라 확실한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알파’를 갖춰야 한다. 호텔이나 리조트 단지 내의 분위기와 환경뿐만 아니라 위치나 인프라, 지역색도 고려해야 한다. 포시즌스는 잘 알려졌다시피 호텔의 주요 규범을 정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럭셔리 호텔의 정석을 상징하는 ‘브랜드’다. 포시즌스 호텔 교토의 자랑은 ‘천 년 고도’ 교토의 위상에 걸맞은 아름다운 연못 정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휴식’이다. 좋은 호텔이 그렇듯 굳이 호텔 밖으로 외출하지 않아도 볼거리, 먹거리가 구비되어 있고, 삼림욕을 하며 정원의 미학을 즐기거나 유자 향 곱게 밴 입욕제를 풀어 넣은 욕조에서의 시간을 즐기며 ‘방콕’만 하더라도 아쉽지 않은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호텔 내 스파에는 마치 산맥의 능선을 형상화한 듯한 디자인의 일본식 ‘오후로(욕실)’가 설치되어 있어 틈틈이 목욕과 사우나를 즐길 수도 있고, 정기적으로 바뀌는 웰빙(피트니스, 요가) 프로그램을 정원에서 소화할 수도 있다. 필자가 머물렀던 기간에는 3층 로비에서 전통 ‘마이코(기생)’ 공연이 짧게 펼쳐지기도 해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이국적인 퍼포먼스를 저마다 휴대폰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는 순간도 있었다. 사계의 매력이 철 따라 다르게 흐르고, 당연히 미식의 결도 달라지지만, 어떤 메뉴든 간에 샤쿠스이엔 정원을 벗 삼아 음미하면 식욕이 절로 돋는 듯한 기분이 느껴진다.
물론 정말로 내내 호텔 안에만 콕 박혀 있을 여행자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교토행이 처음이라거나 유달리 도시 탐색을 향한 에너지가 넘친다면 말이다. 게다가 히가시야마 지구 전체나 그다지 멀지 않은 기온 지구까지 섭렵하지 않더라도 포시즌스 호텔 교토가 자리한 마에카와초(Maekawa-cho)만 한정해서 보더라도 ‘문화 예술 산책’이나 ‘카페 탐방’을 하기에 나쁘지 않다. 호텔을 바로 이웃하고 있는 남예산 묘법원은 특정한 날만 드물게 개방하므로 날짜를 잘 살펴야 하지만 100m 근방에 문화 예술 애호가에게는 필수 관람 코스인 교토국립박물관과 산주산겐도(蓮華王院)가 자리하고 있음을 기억하자. ‘국립’인 만큼 독보적인 소장품은 물론이고 건축가 다니구치 요시오가 설계한 신관과 구관의 대조미가 돋보이는 건축, 카페와 아트 숍, 그리고 한국 ‘태생’의 조각품들이 놓인 뜰을 품은 교토국립박물관은 고미술과 역사를 좋아한다면 반나절은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예술의 전당이다. 바로 건너편에는 세계 최장(120m) 목조 건축물 33칸당과 그 내부에 있는 1천1개의 천수관음상으로 명성이 자자한 산주산겐도가 있다. 혹시라도 창조적 영감에 대한 갈망이 더 솟구친다면 지온인(知恩院), 야사카의 탑, 더 멀게는 철학의 길, 난젠지 등의 이 구역 내 명소까지 한가롭게 걸어서 가보는 ‘도시 산책자’가 되어봐도 좋지 않을까. 가끔씩 정처 없는 나그네가 된 듯 ‘발품’을 많이 파는 도시 산책도 언제든 돌아갈 편안한 호텔의 존재가 있을 때면 마치 정겨운(하지만 몹시도 업그레이드된) ‘집’을 두고 있는 듯 든든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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