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그리고 ‘소통’, 비즈니스 다이닝으로 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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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02, 2014

글 이소영(<사진 미술에 중독되다>, <서울, 그 카페 좋더라> 저자)

21세기에도 비즈니스 다이닝은 여전히 중요하다. 디지털 기기로 소통할 수 있는 최첨단 시대에도 우리에게 비즈니스 다이닝이 꼭 필요한 이유와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주요 트렌드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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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박근혜 대통령의 만찬
비즈니스 다이닝은 아티스트에게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는지? 프랑스의 미술가 클로드 모네는 지베르니를 배경으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곳은 아틀리에이자 비즈니스 다이닝의 주무대이기도 했다. 클로드 모네는 지베르니에서 직접 생산한 식재료로 만찬을 준비해 부유한 화상들에게 대접하며 그림을 비싼 가격에 팔곤 했다. 당시 모네의 초대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지만, 그는 작품 판매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만 초대했다고 한다. 파블로 피카소 역시 만찬을 시작하기 전에 리허설까지 하며 그날의 모임에서 자신의 작품이 돋보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다고 한다. 만찬이 끝나기 전에 자연스럽게 작품이 모두 판매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들 아티스트의 경우는 다소 야박하게 비즈니스 다이닝을 활용해 아쉽지만, 그만큼 비즈니스 다이닝이 중요하다는 증거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현대의 정치인들에게도 비즈니스 다이닝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얼마 전 영국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버킹엄 궁에서 베푼 만찬에서 직접 잡았다는 꿩으로 만든 요리와 샤토 레오빌 라 카스(Cha^teau Leoville Las Case) 1989년산을 대접받으며 앞으로 양국 관계의 우호가 크게 증진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국빈 만찬이라는 것은 사실 여왕과 식사를 같이 하는 것뿐인데 왜 세계의 관심을 받는 것일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년에 한두 명의 정상만 국빈 초대함으로써 왕실의 권위를 굳건히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왕의 초대는 외교와 직결되는 사항이라 정부와 상의해 신중하게 결정하며, 국빈 초대를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영국이 해당 국가를 중시한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만찬에서 어떠한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궁금해진다. 그 은밀한 이야기는 조만간 양국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비즈니스 다이닝은 힘이 세다
이렇게 시대가 바뀌어도 비즈니스 다이닝의 파워가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삼열 전 외교통상부 의전자문위원회 위원장 겸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은 비즈니스도 인간관계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로 간의 합의를 도출하는 수단으로 ‘소통’을 대체할 만한 것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는 화상 전화로 회의를 해도 문제가 없지만 비즈니스 파트너와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비즈니스와 국가 간의 협상은 모두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요. 식사를 함께 하면서 비즈니스가 아닌 사적인 이야기도 나누면서 서로를 알게 되고, 믿어도 될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구삼열 전 위원장은 중요한 결정은 딱딱한 회의석상이 아니라 부드러운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나오기 마련이라고 이야기했다. 서로에게 비판적인 경우라도 여러 번 만나 식사를 하다 보면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하고, 다른 각도에서 상대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긍정적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먹고 마시며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는 비즈니스 다이닝에서는 그 사람의 인품을 완벽하게 숨길 수 없기에 함께 식사를 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에 대해 감히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최근 주목받는 비즈니스 다이닝의 큰 트렌드를 꼽자면, 실용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격식을 중시하던 것에서 벗어나 실용적이고 편안한 만남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시간에 쫓기는 이들이 선호하는 ‘워킹 런천(working luncheon)’은 회의를 하면서 식사를 하는 것을 뜻한다. 서로 토론하면서 식사를 하는데, 외교관뿐 아니라 기업 간에서도 일반화되고 있다. 시간을 단축하면서 보다 친근한 분위기에서 식사하며 회의를 할 수 있기에 추천할 만하다. 하지만 이런 회의를 자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회의와 식사를 동시에 하기 어려워 곤란을 겪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워킹 디너(working dinner)’도 종종 이루어지는데, 저녁 시간에 만나다 보니 술을 한두 잔 곁들이기도 해 더욱 회의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브라운 백 세미나(brown bag seminar)’는 테이크아웃 매장에서 각자 식사할 것을 사 가지고 만나서 회의하는 것을 뜻한다. 테이크아웃 매장에서는 대개 브라운 컬러 종이에 음식을 담아주기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에서 비즈니스 다이닝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A그룹은 한 가지 술을 1차로 8시까지, B그룹은 한 가지 술을 1차로 9시까지 마시자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런 트렌드는 ‘118’, ‘119’라고 불리며, 사회 정화라는 긍정적 효과까지 발휘하고 있다. 폭탄주 문화로 11년 연속 세계에서 프리미엄 위스키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로 군림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불명예를 씻어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레이디 퍼스트의 진화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여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다. 예전에는 초대장에 ‘부인(wife)을 동반하라’라고 게재했다. 그 후에는 ‘배우자(spouse)와 함께 방문하라’라고 썼다. 하지만 요즘은 ‘파트너(partner)를 동반하라’라고 쓰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오피니언 리더 중 여성의 비중이 늘고 있고, 법적인 부부가 아니라 동거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미혼이나 성적 소수자를 존중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영어를 사용할 때에는 여성 차별적인 어휘를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미 글로벌 무대에서는 남녀 평등적인 어휘가 사용되고 있다. 이런 고급 어휘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면 예의 바르고 글로벌한 사고방식을 갖춘 사람이라는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문서에 쓰이는 대명사도 남자를 기준으로 했지만 요즘은 ‘he/she, his/her’를 병기한다. 그리고 ‘회장’은 chairman이 아니라 chairperson, ‘대변인’도 spokesman이 아니라 spokesperson, ‘인류’는 mankind가 아닌 humankind로 바꾸어 사용하는 식이다. 하지만 레이디 퍼스트의 예의는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진다. 테이블에서 여성 왼쪽에 앉은 남성은 여성이 착석하거나 일어날 때 의자를 빼주거나 밀어주며 도움을 주는 것이 좋다. 음식을 서브할 때도 여성 게스트에서부터 시작해 여성 호스트로 이어지고, 그다음이 남성 게스트와 호스트의 차례이다. 와인 역시 테이스팅은 호스트가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여성 게스트의 잔부터 와인을 따라주는 것이 매너이다. 자동차를 탈 때도 여성이 우선적으로 승차하고, 내릴 때는 남성이 먼저 하차해 여성이 내리는 것을 도와준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배려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으면서도 비즈니스 다이닝에서 돋보이는 언행이 될 수 있으니 당장 실천에 옮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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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식을 주목하라
세계적으로 헬스 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점심 식사는 최대한 가볍게 주문하고, 술을 덜 마시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렇게 비즈니스 다이닝에서도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다 보니 몸에 좋은 한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전통 한식 레스토랑보다는 한식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새로운 레스토랑이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얼마 전, 뉴욕에서 미슐랭 2 스타를 획득한 퓨전 한식 레스토랑 ‘정식당’은 뉴욕과 서울에서 비즈니스 다이닝을 위한 인기 레스토랑으로 떠올랐다. 한식의 다양성과 조합의 묘미에서 영감을 얻은 이곳에서는 외국인 게스트도 한식을 친근하게 접할 수 있다. 한식은 사실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여러 요리를 큰 상에 가득 차려내는 전통 한식이라면 외국인들은 메인 요리가 무엇인지 몰라 어떤 순서로 먹어야 할지 당황할 수 있다. 서양식 코스 요리 형식으로 한식을 서브할 때도, 밥과 국이 디저트 바로 앞에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미 배가 부른 해외 게스트들은 메인 요리를 또 먹어야 한다는 것에 난감해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멋과 풍류를 담은 한식과 전통 술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식사 전에 게스트에게 설명을 해주어야 그날의 식사가 좋은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현대의 한식당 중에는 세련된 서브 형식과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단을 따로 마련한 곳도 많아 외국 게스트와 함께 식사하는 비즈니스 다이닝에 적합하다. ‘정식당’ 이외에 ‘품 서울’, ‘오늘’, ‘비채나’, ‘시화담’, ‘달개비’, ‘콩두’ 등의 모던 한식 레스토랑들이 호평을 받고 있다. 해외 게스트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한식의 재발견은 기분 좋은 트렌드로 여겨진다. 한식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고깃집으로 초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부분의 해외 게스트에게 숯불에 갈비를 구워 먹는 문화는 상당히 신선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기억해두시라.
와인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한식과 와인을 매칭하는 즐거움 역시 비즈니스 다이닝의 흥미로운 도전으로 여겨지고 있다.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의 유영진 소믈리에가 한식과 와인의 매치에 대해 개인적으로 몇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첫째, 론 와인은 한식과 좋은 궁합을 이룬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밭이 있는 론 지역의 시라 품종으로 만드는 레드 와인은 강한 풍미가 특징이라 한식과 잘 어울린다. 다음으로 로제 와인은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한식은 서양 요리와 달리 맛의 스펙트럼이 넓기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성격을 두루 갖춘 핑크 컬러의 로제 와인은 모든 요리에 어울린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매운 요리에는 스파이시한 와인을 선택할 것을 권한다. 스파이시한 와인은 요리의 매운맛을 더욱 부추겨 이국적인 궁합을 이룬다. 이제 비즈니스 다이닝에서 와인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격식을 갖춘 비즈니스 다이닝이라면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대세다. 이전에는 점심 식사에도 도수 높은 칵테일을 곁들이곤 했지만, 이제는 와인 한두 잔으로 대체한다. 세계적으로 경제 위기가 대두된 이후에는 맛이 진한 고가의 와인보다는 가격대가 적당한 밸런스 좋은 와인이 주목받고 있다. 레스토랑에 와인을 직접 가지고 가서 접대하는 호스트가 종종 있는데, 사실상 이는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코르크 차지를 지불한다 해도 우리나라 레스토랑에서는 결코 달가워하지 않는 관례이기 때문이다. 코르크 차지는 미국이나 호주에서는 가능한 일이기는 하나, 와인메이커가 자신의 와인을 레스토랑에 가지고 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유럽에서는 있을 수 없다. 피치 못하게 의미 있는 와인을 비즈니스 다이닝을 위해 레스토랑에 가져가게 되었다면, 화이트 와인이나 디저트 와인을 주문해 레스토랑의 소믈리에에게 예의를 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클래식 공연을 함께 보고 식사를 하는 것도 비즈니스 다이닝의 새로운 유행이다. 저서 <글로벌 파워 매너>를 출간하기도 한 서대원 전 UN 대표부 차석 대사는 대화에 공통된 소재가 있어야 사교가 잘 이루어진다고 조언했다. “식사는 서로 대화하려고 만든 자리입니다. 식사만 할 수도 있겠지만 오페라나 발레 공연을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면 이야깃거리가 더욱 풍성해집니다. 비즈니스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면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공연을 함께 본다면 자연스럽게 친밀해지고 신뢰감이 높아질 것입니다.” 공연을 보기 전에 식사를 할 수도 있고 관람 후에 식사를 해도 무방하다. 뉴욕에서는 공연 1막이 끝나고 2막이 시작되기 전 인터미션 시간에 식사를 하는 문화도 있다. 비즈니스 파트너와 함께 공연을 볼 때 유의할 사항은 서로가 관심 있는 작품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트너가 오페라를 처음 본다면 지루해할 수 있으니, 대사가 없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 공연을 선택하는 것이 무난할 수 있다. 반면 상대방이 클래식 애호가라면 사전에 공부를 하고 가는 것이 대화가 끊이지 않는 요령이다. 이처럼 현대에도 비즈니스 다이닝의 파워는 오히려 더 중요하게 여겨지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 다이닝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을 중요한 한 가지는 ‘배려’다. 게스트를 배려하고 호스트를 존중하는 성숙한 인품을 느낄 수 있는 식사를 함께 했다면, 비즈니스에서 웬만한 어려움은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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