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18 SUMMER SPECIAL] 미술관 너머, 일상으로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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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4, 2018

글 황다나

언제부턴가 틈만 나면 떠나게 됐다. 결코 정주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일상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인생의 속도를 한껏 늦추기 위함이다. 그렇게 만나는 여행지에서 어김없이 머무르는 장소는 바로 미술관이다. 기억이 켜켜이 쌓인 시공간을 마주하는 것이다. 예술가의 사색과 고민이 녹아든 작품, 삶의 궤적, 그 일부, 때로는 전부, 그를 에워싼 주위 세계와 시대의 흐름이 담긴 작품 사이를 거닌다. 겹겹이 얽힌 세월을 이토록 찰나에 들여다볼 수 있으니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낯선 이로 넘실대는 곳에서 역설적으로 마음의 여유가 찾아오고, 이내 시선은 관람객에게 향한다. 표정, 몸짓, 옷 차림새, 기호와 취향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그 ‘다름’을 관찰하다가 어느덧 스스로와 대면한다. 여행길에서 나 자신을 조우하게 해준 고마운 미술관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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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그 이상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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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목적지(destination)는 결코 장소(place)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보기(a new way of seeing things)라고 소설가 헨리 밀러(Henry Miller)는 말했다. 여행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는 마음이 쉬어 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유는 눈으로 하여금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도록 만들고, 귀를 쫑긋 세우게 한다.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는 행위가 좋아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면, 이러한 여정이 결국 나 자신으로 향하는 길이라 깨닫게 해준 곳이 바로 ‘로스코 채플(www.rothkochapel.org)’이다.
아름다움이라는 흔한 말로는 미처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휴스턴의 한적한 주택가에 옹기종기 들어선 메닐 컬렉션(The Menil Collection) 갤러리를 배회한 끝에 만난 로스코 채플은 좀처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선사했다. 예배당 위로 햇살이 비치면 더욱 빛을 발하는 이곳에는 위대한 예술가 마크 로스코가 생전에 그린 작품과 더불어 등받이 없는 의자, 땅바닥이 익숙한 이들을 위한 방석이 곳곳에 놓여 있다. 어떤 종파의 유신론자든 무신론자든 누구나 원하는 방식대로 앉거나 서서 명상에 잠기거나 안식할 수 있다. 타인의 존재가 크게 느껴지는 공간에서 각자의 기도와 바람이 부유하며 어우러진다. 들어올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조금은 독특한 색채의 그림이 입구이자 출구로 이어지는 벽에 걸려 있다. 나가는 순간에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도록 배치된 작품은 탁한 핏빛을 띤다. 심한 압박감에 시달리던 로스코는 이 공간이 문 열기 1년 전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묵직한 철문을 밀어 고요한 평온함과 혼란스러운 무거움이 편재하는 이곳을 나서자 햇살 가득 쏟아지는 바깥세상이 펼쳐진다. 채플 앞 작은 정원 대나무 숲이 바람 소리 사이로 쉬어 가라고 손짓한다. 아름드리 정자나무 아래 벤치에 잠시 앉아 마음을 추스르고 나니 다람쥐 한 마리가 열심히 도토리를 갉아 먹는 모습이 눈에 띈다. 마치 지금 이 순간만이 마치 인생에서 전부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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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cupture-Park-(Photo-Kim-Hansen,-Credit-Louisiana-Museum-of-Modern-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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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머금은 미술관에서 나를 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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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코펜하겐 북쪽 외곽에 위치한 ‘루이지아나 미술관(https://louisiana.dk)’은 자연에 스며들어 있는 미술관의 전형이다. 녹지가 많기로 유명한 이 도시에 도착해 미술관을 찾아가는 여정은 그 시작부터 자연이 도처에 함께한다.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출발해 30여 분을 달려온 기차에서 내리면 풀 내음 물씬 풍기는 산책길이 나온다. 정겹게 지저귀는 새소리를 벗 삼아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지루할 새 없이 어느새 미술관이 서서히 자태를 드러낸다.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운치 있는 빌라에 자리한 루이지아나 미술관은 여타 화이트 큐브와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다. 공들여 수집한 소장품을 선보이는 상설전이나 유명 작가와 신진 작가를 고루 소개해온 기획전도 인상적이지만, 루이지아나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창 너머 보이는 풍경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작품이 되는 공간이다. 한 면 전체가 시원하게 유리로 덮인 자코메티 갤러리는 단연 압권이다. 통유리창을 통해 펼쳐지는 사계절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은 자코메티의 작품과 조화를 이루며 ‘걸려’ 있다. 헨리 무어, 리처드 세라의 작품이 길목마다 (비교적 겸허히) 놓여 있는 조각 정원은 또 어떤가. 대가들의 작품 뒤로 펼쳐진 해안선이 시야에 들어오면 절로 숨통이 트인다.
이번에는 칼더의 모빌 작품이 바람결을 따라 천천히 돌아가고 연둣빛으로 물든 언덕 아래로 회녹(灰綠) 빛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앉아본다. 이 순간에 정지해 있다 보면 자연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임을 곱씹으며 복잡한 생각을 잊게 된다. 사방에 깔린 평화로움 속 나뭇잎 사이로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과 풀밭을 뛰놀며 작품 사이를 활보하는 어린이들의 즐거운 비명 소리가 그 단조로움에 약간의 화음을 더해준다. 그렇게 한참 있다 보니 야외 공연이 시작됐다. 깊은 울림을 주는 첼로와 머리끝부터 공명하는 바이올린의 현이 울려퍼져 바다 내음이 나는 가락을 들려주는 현대 음악 콘서트. 삶의 흐름을 나만의 템포에 맞추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속삭임이 들리는 어느 완벽한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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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품에서 예술과 통하다
Museum SAN
도심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둘러싸인 미술관 특유의 아늑함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은 한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전 세계 곳곳에 미니멀한 건축물을 설계하며 선보여온 노출 콘크리트 소재에 한국의 조약돌, 자갈, 모래와 따스한 빛깔의 파주석(자연석)을 보태 산과 물, 빛과 어우러지도록 조화롭게 설계한 원주의 뮤지엄 산(Museum SAN, www.museumsan.org)이 대표적이다. 산 위 고유의 지형에 순응하며 사계절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과 문화의 어울림 속에서 사유하고 쉬어 가는 곳이다. 종이의 탄생부터 한지의 문화적 가치까지 두루 짚어볼 수 있는 페이퍼 갤러리와 20세기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회화, 판화, 드로잉 작품을 선보이는 청조갤러리 등 전시 공간을 갖추고, 판화 공방 등 다채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복합 문화 예술 공간이다. 뮤지엄 산은 특히 빛과 공간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작품으로 유명한 현대미술 거장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영구 설치물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만나볼 수 있는 미술관으로 개관 당시부터 화제가 됐다. 인공 조명과 자연광, 하늘의 환상적인 조합이 베푸는 빛의 향연 앞에 숭고함을 뛰어넘어 경외심마저 자아내는 ‘스카이스페이스(Skyspace)’를 비롯해 터렐의 감각적인 작품은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는 시간을 선사한다. 뮤지엄 산은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보다 특별한 분위기에서 관람할 수 있는 ‘컬러풀 나이트(Colorful Night)’ 외에도 여름철을 맞이해 오는 8월까지 매주 토요일 진행하는 ‘인문학이 있는 제임스 터렐’ 프로그램을 사전 예약제로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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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조형’, 매일매일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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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으로 떠나는 여정을 거듭하다 보니 차차 시간을 바라보게 됐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꿈꾸는 제주의 ‘수(水)·풍(風)·석(石)박물관’은 시간 흐름이 유난히 명징하게 투영되는 듯하다가도 금세 모호해지는 공간이다.
제주도 비오토피아(Biotopia) 생태 공원 내에 자리한 박물관은 단지 총괄 설계를 맡아 ‘포도 호텔’, ‘방주교회’ 등을 잇달아 선보인 재일 건축가 이타미 준의 솜씨다. 그는 수박물관의 타원형 검정 자갈밭을 뒤덮은 잔잔한 수면 위에 바닷바람 혹은 쏟아지는 비로 하여금 파동을 빚도록 했다. 풍박물관의 바람과 바람 사이, 공백이 스쳐 지나는 소리, 석박물관의 대자연의 섭리를 담은 태양의 움직임은 그가 자연과 함께 이뤄낸 합작품이다. 늘 모국을 그리워하던 건축가는 아릿할 정도로 파란 하늘부터 안개가 자욱한 풍광에 이르기까지, 매일같이 다른 날씨를 머금고, 하루하루가 다르게 무수히 많은 풍경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머물게 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돌로 만든 각기 다른 다양한 형태의 조각상이 공간을 수호하고 있다. 돌 아래 피어난 아지랑이, 풍뎅이, 소금쟁이가 온기가 느껴지는 그 여정에 동행한다. 이타미 준이 추구한 건축의 기능인 ‘공간과 사람, 자신과 남을 잇는 소통과 관계의 매개’를 너머 건축물 자체로 작품이 된 이 박물관은 반세기에 걸친 그의 작품 활동을 통틀어 으뜸으로 손꼽힌다. 예약이 필수(https://www.biotopiamuseum.co.kr:5010/biotopia/web/sub02_01.px)지만, 날씨에 따라 취소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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