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여성, 그 빛나는 이름들 Rej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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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06, 2022

글 고성연

Exhibition in Focus


롯데갤러리가 전국 5개 롯데백화점 지점(본점, 잠실점, 동탄점, 인천터미널점, 광주점)을 무대로 하나의 공통 테마로 기획한 대규모 여성 작가 전시 <REJOICE(리조이스)>展이 눈에 띈다. 꿈, 감각, 도전 등 삶의 환희는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Rejoice’라는 단어로 묶었다.
갤러리와 아트월까지 포함하면 총 8개의 연계 테마 전시를 아우르면서 국내 여성 작가 40여 명의 작품 3백70여 점을 선보이는데, 이 정도면 갤러리 단위로는 역대급 규모다. 그저 ‘여성’이라는 일차원적인 교집합을 내세운 게 아니라 다각적인 전시별 주제 아래 풍부한 콘텐츠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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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간판’으로 내거는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쓱 훑어보노라면 적어도 ‘성별’이나 ‘성비’가 크게 거슬리는 경우는 별로 없는 듯하다. 그래서 1971년에 나온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의 유명한 논문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없었는가?’라는 제목은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기념비적인 저작물이긴 해도 더 이상 시의성이 크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문장에서 ‘위대한’이라는 형용사는 여전히 주목할 만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 물론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함부로 붙일 게 아니지만, 어쩐지 여성 아티스트들에 대해서는 더 인색한 표현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그런 고정관념이 어떤 식으로든 반영되고 있지는 않을까, 한 번쯤 진중히 생각해볼 여지는 있다. 여성, 남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구시대적’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는 시대지만,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해 지구촌 곳곳에서 열린 행사 퍼레이드 소식을 접하면서도 ‘무감각하게’ 지나치기 쉬운 ‘위대한 그녀들’의 존재가 분명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롯데갤러리의 대규모 여성 작가 전시 <REJOICE(리조이스)>展은 우리가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아티스트들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꿈, 지성, 감성, 감각, 즐거움, 도전, 인내, 행복 등 ‘리조이스’에 대한 여덟 가지 해석을 보여주는 만큼 다채로운 콘텐츠를 뽐낸다. 예컨대 자수의 맥을 잇고 현대적인 위상을 부여하는 여성 작가를 조명하기도 하고(광주점 <자수일상>), 여성이 지닌 각양각색의 페르소나를 표현하기도(동탄점 <Be You!>) 한다. 본점의 아트월을 각기 다른 매력으로 수놓고 있는 니키 드 생팔과 정희승의 개인전 <Bulletproof!>와 <Still Life>도 놓치기에 아까운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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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추상미술의 얼굴들_<REJOICE: 추상의 표정>展

여러 지점에 걸쳐 펼쳐지는 롯데갤러리의 팔색조 전시는 저마다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잠실점 에비뉴엘 아트홀에서 진행 중인 <추상의 표정>展은 아무래도 무게감 차원에서 인상이 깊다. 현대미술의 역사에서 ‘추상’은 오랫동안 남성이 주도하는 영역처럼 다뤄져온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빼어난 스타일로 ‘차가운 추상’을 해온 작가지만 89세에 이르러서야 명성을 얻은 카르멘 헤레라는 ‘쿠바 출신+여성’이 아니었다면 더 일찍 알려지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을 자아낸 유명한 사례다. 지난해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마치 이런 애석함을 달래듯 <Women in Abstraction>이라는 대규모 전시를 열기도 했다. 이번 롯데갤러리의 <추상의 표정>展에는 박정혜, 제여란, 안정숙, 윤종주, 홍승혜 등 저마다 예술 세계를 공고히 쌓으며 추상의 길을 걸어온 5인의 작가를 소개한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단색화> 전시에 참여했던 유일한 여성 작가인 안정숙, 붓이 아니라 실크스크린 판화를 제작할 때 쓰는 고무 막대기 ‘스퀴즈’를 도구로 활용한 회화 작업을 30여 년간 구축해온 제여란, 디지털 도구를 적극 활용해 영상, 설치, 연극 등 ‘유기적 기하학’의 세계를 다양한 영역에서 확장시켜온 홍승혜, 자연이 품고 있는 미묘한 색의 변화를 ‘미디엄’이라는 재료를 수없이 붓고 말리는 과정으로 캔버스에 담아내는 윤종주, 자연과 인간의 관계 속에 놓여 있는 현재의 풍경이 지닌 속성을 잡아내 퍼즐처럼 재배치하는 그림을 그리는 박정혜.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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