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달리는 현실적 몽상가, 노먼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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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3, 2024

글 김민서

서울이 이제는 전 세계 건축 거장들이 경쟁을 펼치는 유력한 무대가 되었다. 헤어초크 & 드 뫼롱, 리처드 마이어, 구마 겐고, 토머스 헤더윅 등 웬만한 네임 밸류가 아니고서는 기억에서 쉽게 지워질 정도다. 세계 건축계가 주목하고 이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흥미롭게 바뀐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때로는 혁신과 새로움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인지 스스로 되묻게 된다. 허물고 또 세워지는 것이 건축의 본질이라지만, 진짜 지속 가능한 건축에 관해 진지하게 질문하고 대답을 ‘실천적으로’ 찾아온 건축가를 본 적이 있었던가. 준공 이후뿐 아니라 건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과 탄소 배출, 사용 에너지에 대해 깊이 고민한 건축가가 있었던가. 그래서 도시의 풍경이 다시 그려지고 있는 시점에서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가 더더욱 남다르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하이테크 건축의 대명사처럼 불리지만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지속 가능한’ 건축의 선두 주자라 칭할 만한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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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SeMA)의 올해 전시 의제는 ‘건축’이다. 서소문 본관에서 열린 전시 <미래긍정: 노먼 포스터, 포스터 + 파트너스>가 그 포문을 열었다. 긴 줄을 서서 입장해야 할 정도로 전시가 인기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개관 시간에 맞춰 서둘러 출발했다. 다행히 기다리는 수고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전시장 입구부터 관람객이 붐벼서 전시품을 한눈에 보려면 인내심이 조금 필요했다. 국내에서 커리어 전반을 다룬 서적이라고는 데얀 서직(Deyan Sudjic)의 번역서 정도뿐인 영국의 노장 건축가에게 이렇게 많은 대중의 관심이 쏟아지는 모습이 다소 신선하게 다가왔다. 작년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대규모 전시가 대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아시아 최대 규모라는 서울 전시가 파리 전시를 보지 못한 이들의 아쉬움을 달래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처음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건축물을 마주한 것은 20여 년 전 여름, 유럽 배낭여행 중 런던에서였다. 당시 런던 시청이 갓 완공된 시기였는데, 고풍스러운 영국식 건물들과 하늘로 솟은 현대식 빌딩 숲 사이에서 마치 무당벌레처럼 둥글게 기울어 있는 유리 건물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한 기억이 있다. 독특한 형태와 곡선 유리로 감싼 건축 기술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그것이 시청 건물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런던에는 런던 시청을 포함해 밀레니엄 브리지, ‘거킨’ 빌딩(공식 명칭은 30 세인트 메리 액스), 윌리스 빌딩 등 노먼 포스터의 손길이 닿은 상징적인 건축물들이 포진해 있다. 최고의 권위를 지닌 프리츠커상(1999년)을 비롯해 전 세계 온갖 건축상을 휩쓸며 가난한 노동자 집안 출신에서 ‘lord’라는 작위를 받은 입지전적 인물로, 그가 얼마나 영국의 자랑으로 추앙받는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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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성을 위한 첨단 건축

노먼 포스터는 1935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나 맨체스터 대학교와 예일 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예일 대학교에서 만난 동료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하이테크 건축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퐁피두 센터를 렌초 피아노와 공동 설계했다), 웬디 치즈먼과 함께 1962년 팀 4(Team 4)를 결성해 당시 첨단 기술과 혁신적 디자인을 결합한 프로젝트로 주목 받았다. 이후 포스터는 웬디 치즈먼과 함께 ‘포스터 어소시에이츠(Foster Associates)’를 창립했고, 이는 훗날 2천 명이 넘는 국제적 규모의 건축 스튜디오 포스터 + 파트너스(Foster + Partners)로 성장한다.
포스터 + 파트너스는 개별 건축에서 도시 설계까지 다방면에서 활동하면서 전 세계 도시의 풍경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해왔다. 대표적인 예로, 20년 전 완공된 거킨 빌딩은 프로젝트 초기에 독특한 형태 때문에 ‘에로틱 거킨’이라며 대중의 조롱 섞인 야유를 받았지만, 런던의 스카이라인을 재정의하며 현대건축의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런던 최초의 환경친화적 마천루로, 이 건축물로 노먼 포스터는 영국왕립건축가협회로부터 스털링상을 수상했다).
어떻게 저런 형태의 건축 설계와 시공을 실현할 수 있을까 궁금할 정도로 노먼 포스터라는 이름에는 ‘하이테크 건축’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뉴욕의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등장한 하이테크 건축은 고도의 기술과 현대적인 소재를 사용해 건물을 디자인하고 건축하는 방식을 말한다. 전통적인 건축의 규칙을 뛰어넘어 혁신적인 디자인과 기술을 특징으로 하며, 강철, 유리, 콘크리트 같은 현대적인 소재로 구조물을 만들고 기능성을 강조하면서도 시각적으로도 혁신적인 디자인을 추구한다. 하지만 이번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서는 하이테크를 넘어 더 넓은 의미에서 그가 반세기 넘게 추구해온 건축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
노먼 포스터는 60여 년 전부터 지속 가능성에 대해 깊이 고민해온 친환경 건축의 선구자로, 미래학자 버크민스터 풀러와 밀접하게 소통하며 기술을 통한 사회적 발전에 대한 낙관적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 환경을 보호하고 자원을 절약하는 건축을 추구하며, 이를 위해 첨단 기술을 적극 도입했다. 그는 건축이 건물 설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1971년 거대한 돔 안에 자연과 사무실을 결합한 ‘기후사무소(Climatroffice)’ 연구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인공 하늘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지오데식 돔(다면체로 이루어진 반구형)의 유리 외피, 건물 내부에 조성한 공유 정원 등을 통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의 이상을 제시했다. 또 1975년에는 노르웨이 선박 회사를 운영하는 프레드 올센의 의뢰로 스페인의 고메라섬에 자율 에너지 시스템, 폐기물 재활용 등 자연 환경을 해치지 않는 새로운 관광 산업을 위한 프로젝트(일명 고메라 지역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비록 연구로 그친 프로젝트였지만, 이후 포스터 + 파트너스의 많은 작업 DNA가 이때 형성된 것이 아닌가 싶다.
현재 포스터 + 파트너스는 자체 개발한 프레임워크를 통해 거주 중 사용하는 운영 에너지뿐 아니라 건설 과정에 필요한 내재 에너지를 파악해 탄소 배출량을 관리하고 조율한다. 거대한 타이어 모양의 애플 파크는 지속 가능성과 혁신의 결합을 보여주는 포스터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그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려지게 한 프로젝트일 것이다. 획기적인 디자인에 가려져 있지만 애플 파크는 기존 건물의 건축 자재 90%를 재활용하고, 부지의 80%를 녹지로 조성하며, 100% 재생 가능 에너지로 구동하는 등 건강한 환경과 에너지 절약에 집중한 건축물이다. 스티브 잡스가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 안타까울 만큼 이 프로젝트는 애플이란 브랜드의 혁신성만큼 지속 가능한 건축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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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를 이어 미래를 꿈꾸다

포스터 + 파트너스의 지속 가능한 디자인 접근 방식은 지역 전통에서 배우고, 지형과 기후를 조사하는 것에서 시작해 우리가 직면한 세계적인 생태학적 문제와 인프라 과제를 해결하는 것까지 확장된다. 최첨단 기술을 버무리는 하이테크 건축의 대가로 불리기도 하지만 노먼 포스터는 “기술만으로는 도시화와 인구 증가로 발생하는 사회적, 경제적, 생태학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중국의 풍수 사상을 설계에 반영한 홍콩 상하이 은행(HSBC) 프로젝트 사례처럼 단순히 건축 설계가 아닌 건축물이 세워지는 지역의 문화적, 사회적 맥락의 이해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또 그의 건축은 때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오래된 건축에 현대적 해석을 더한 ‘레트로핏(retrofit)’ 접근을 통해 낡고 녹슬고 허물어진 건축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 역시 앞서 말한 지속 가능성이라는 맥락과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건축물을 확장하고 개조하는 행위는 더 넓은 맥락에서 문화적인 공간을 만드는 동시에 역사의 생명력을 연장시키는 작업이다. 한때 서울에서도 유형처럼 번졌던 ‘재생 건축’과 개념은 비슷하지만 노먼 포스터는 첨단 기술을 활용해 건물의 에너지 효율과 탄소 배출을 최적화했다.
현재 포스터 + 파트너스는 스페인에 있는 빌바오 미술관을 현대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1945년에 세워진 건물의 원래 입구 위치를 다시 살려 미술관 정면이 도시 쪽을 향하도록 설계해 예전의 건축적 요소를 다시 부각하면서도 현대적인 접근 방식을 적용했다. 자연 채광을 최대한 활용해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전시 공간을 밝고 쾌적하게 유지하는 등 지속 가능한 건축을 실천하고 있다.
전쟁과 재건축으로 훼손되었던 독일 국회의사당도 1999년 노먼 포스터의 제안에 따라 새롭게 탈바꿈한 사례다.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의사당으로 정치인과 국민이 같은 출입구를 사용하도록 설계하고, 국민이 의회장을 내려다볼 수 있게 투명한 유리 돔을 만들었다. 여기에 태양광발전과 식물성 바이오 연료를 사용해 탄소 배출량을 94% 줄였으며, 사용 에너지보다 더 많은 재생에너지를 생산한다.
노먼 포스터의 건축 철학은 단순히 독특한 형태를 만드는 것을 넘어 지속 가능성과 기술 혁신을 통해 사회적, 환경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지구 밖 행성에서의 미래 건축도 내다본다.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도 어쩌면 이번 생에서 이룰 수 없을 거라는 달과 화성 거주를 그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구상하고 있었다. 이렇듯 노먼 포스터는 ‘건축이 본질적으로 혁신적인 행위’여야 한다고 믿으며, ‘새로운 개념의 건물을 설계하거나 도시의 마스터플랜을 구상하는 것 자체가 희망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낙관주의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 제목 ‘미래 긍정(Future Positive)’이 이보다 더 적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과거, 현재, 미래를 망라한 그의 작업들을 통해 건축의 역할과 가능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그리고 단순히 건축을 넘어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지속 가능한 방법을 탐구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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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


01. Intro ECOSOPHIA  보러 가기
02. Front Story  미래를 달리는 현실적 몽상가, 노먼 포스터 보러 가기
03. ‘Do more with less’를 위한 여정   Interview with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 보러 가기
04. 자연에 오롯이 기대어 생각에 잠기다  정중동(靜中動)·동중정(動中靜)의 미 보러 가기
05. 백색의 3중주  아그네스 마틴, 정상화, 리처드 마이어 보러 가기
06. 예술로 동시대와 공명하는 법  Interview with 캐롤 허(Carol Huh) 큐레이터(스미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 보러 가기
07. 부드럽게 일렁이는 변화의 바람  2024 TEFAF 뉴욕 & 휘트니 비엔날레 보러 가기
08. 영화 속 예술, 예술 속 사유  보러 가기
09. Exhibition in Focus  보러 가기
10. Remember the Exhibition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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