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열기로 달아오르는 홍콩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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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07, 2018

글 고성연

홍콩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을 맞이하는 도시 중 하나다. 면세 지역인 동시에 온갖 명품 브랜드를 접할 수 있는 쇼핑 인프라, 미식 도시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다. 하지만 홍콩의 봄은 문화 예술의 향기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해마다 3월이면 아시아를 대표하는 미술 장터로 자리매김한 아트 바젤 홍콩을 비롯해 경매, 전시,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줄지어 열린다. 금융 허브만이 아니라 현대미술의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는 홍콩에서 펼쳐지는 봄의 축제를 미리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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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말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은 강원도 평창의 겨울 스포츠 축제가 대장정을 마쳤다. 그 바통을 이어 동계 패럴림픽이 3월 중순까지 펼쳐지고 나면 아마도 완연한 봄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할 것이다. 올림픽이라는 초대형 이벤트는 굳이 스포츠 팬이 아니어도 뭇사람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힘을 가졌지만, 아마도 문화 예술 애호가라면 이제 봄맞이와 함께 3월의 홍콩을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시아 현대미술계 최대의 미술 장터로 명성을 굳힌 아트 바젤 홍콩(Art Basel in Hong Kong)을 비롯해 그와 동시에 열리는 위성 아트 페어인 아트 센트럴(Art Central) 페어, 지역을 대표하는 공연 예술 축제 ‘홍콩 아트 페스티벌(Hong Kong Art Festival)까지, 그야말로 ‘홍콩 문화 예술의 달(Hong Kong Arts Month)’이라는 문구에 걸맞은 행사가 펼쳐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홍콩이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이자 중국 본토의 관문, 인기 관광지일 뿐만 아니라 이제는 명실공히 지역을 상징하는 ‘아트 허브’로 자리 잡은 비결은 뭘까?
수년 만에 확고히 자리 굳힌 아트 바젤 홍콩
홍콩에 15년 넘게 살았다는 한 저자는 책을 펴내면서 서두에 이 도시에 ‘문화의 사막’이라는 오명이 오랫동안 따라붙었다고 말한다. 그 배경에는 식민 통치라는 역사적 특수성의 영향으로 자신들만의 문화를 갖지 못했다고 생각한 홍콩 사람들이 있었고,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쇼핑몰이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한 탓에 문화적 경쟁력이 가려진 측면도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화, 특히 미술 같은 영역은 자본 없이 성장하기 힘들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터. 게다가 규모는 작지만 동서양이 만나는 기항지답게 워낙 배경이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는 허브 도시라면 나름대로의 창조성이 싹틀 수 있는 환경임에 틀림없다.
물론 최근에는 문화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도 인정받고 있다. 특히 미술 시장의 거점이라는 이미지가 꽤 강하게 부각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아트 페어 브랜드인 아트 바젤의 역할도 컸다. 스위스 아트 바젤을 운영하는 MCH 그룹이 지역 페어인 홍콩 아트 페어(Art Hong Kong)를 인수해 아트 바젤 홍콩으로 재탄생시키면서 시작된 것이 불과 몇 년 전인 2013년의 일이다. 아트 페어는 2010년 이후 거래 규모가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전체 미술품 거래량의 40%(2014년 기준)를 책임지는 각광받는 미술 장터가 되었다. ‘큰손’으로 등장한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스위스 바젤, 미국 마이애미에 이어 홍콩을 새로운 플랫폼으로 삼은 아트 바젤은 특유의 기획력과 현지화 전략, 뛰어난 브랜드 자산을 바탕으로 불과 2년여 만에 아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간판 아트 페어로 떠올랐다. 가고시안, 화이트 큐브 같은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갤러리들이 앞다퉈 아트 바젤 홍콩을 찾기에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웬만해서는 6월에 열리는 스위스 아트 바젤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중화에도 성공하면서 지난해 5회 행사에서는 8만 명 가까운 관람객을 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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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중요한 질문: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한 아트 페어인가?

“비교적 단기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데는 콘텐츠의 질, 브랜드, 홍콩이라는 지리적 위치와 세금의 유연성, 정부 차원의 후원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어요.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결국 ‘품질’이에요. 브랜드라는 것도 결국은 내용으로 뒷받침되어야 의미가 있으니까요.” 32개국 2백48개 갤러리가 참여하는 올해 페어(3월 29~31일)를 홍보하기 위해 지난해 말 한국을 찾은 아트 바젤 홍콩의 아시아 담당 디렉터 아델린 우이(Adeline Ooi)의 말이다. 그녀는 “우리가 갤러리 선정에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불만도 많이 사는 걸 알고는 있는데, 그게 오만함으로 잘못 해석되기도 한다”고 아쉬워하면서 “하지만 훌륭한 갤러리를 선보임으로써 시장에 진지한 마인드를 갖춘 컬렉터가 나오는 데 기여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궁극적으로는 좋은 아티스트를 지원한다는 기본 철학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상업성을 바탕으로 하는 아트 페어도 궁극적으로는 아티스트를 위한 생태계의 한 엔진이라는 얘기다. 공신력 있는 아트 페어와 경매 시장은 ‘가격’에 대한 의심이 많은 까다로운 소비자의 경계심을 어느 정도 낮춘다. “미술품을 처음 접하는 구매자가 ‘가격 산정’을 궁금해하는 건 당연하죠. 그래서 ‘숫자’가 책자로 발표되는 2차 시장(경매)을 보다 공식적인 채널로 바라보기 마련이고요. 그러다가 지식과 경험이 쌓이면 점차 갤러리나 아트 페어 같은 1차 시장으로도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살아 있는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풍부하게 접할 수 있으니까요.” 그녀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좋은(이미 인정받고 있거나 가능성 있는 작가의 작품을 보유한) 갤러리를 엄선해 소개하는 아트 페어의 역할이 사뭇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했다. 아트 바젤 홍콩의 경우에도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오히려 참가 갤러리 숫자를 줄였고, 일정 규모를 유지하면서 ‘소화 가능한’ 수준을 맞추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이미 ‘걸어 다니기 힘들다’, ‘볼거리가 너무 많다’는 불평을 들어왔으니까요.(웃음)”

장내외 열전, 갈수록 다양해지고 풍성해지는 볼거리

올해 아트 바젤 홍콩에 참가하는 한국 갤러리는 11곳으로 지난해 9곳에서 더 많아졌다. 신규로 참가하는 갤러리는 조현화랑과 갤러리바톤, 우손갤러리다. 메인 섹션인 ‘갤러리즈’에서 국제갤러리, PKM갤러리, 아라리오갤러리, 학고재, 리안갤러리 등을 볼 수 있다. 올해는 수년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단색화만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한국 미술의 면면이 부각될 것으로 점쳐진다. 메인 섹션을 보면 학고재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민중미술 작품을 내놓을 예정이고, 리안은 아방가르드 작가 이건용과 수없는 반복 작업을 통한 한국적 선이 돋보이는 회화 세계를 지닌 남춘모 작가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또 한두 명의 작가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인사이트’ 섹션에는 숯의 작가로 유명한 이배, 한국적 추상회화를 이끌어온 이강소, 힘찬 붓질과 색감이 인상적인 추상 작가 제여란 등을 소개한다. 큐레이터의 역량을 좀 더 확실히 가늠할 수 있는 ‘캐비닛’ 섹션에는 김용익 작가(국제갤러리)와 김구림 작가(아라리오갤러리)의 방대한 작품 커리어를 압축적으로 다룰 전망이다.
대개 아트 페어 같은 행사가 열리는 국제도시는 전시장 바깥 풍경이 더 흥미로운 경우가 많다. 크고 작은 갤러리와 대안 공간에서 다채로운 행사를 쏟아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외려 전시장 바깥에서 벌어지는 장외 열전의 수준이야말로 아트 도시로서의 경쟁력을 말해주는 지표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홍콩 행정부가 ‘국책 프로젝트’로 야심 차게 개발 중인 시주룽 문화 지구(西九文化區·WKCD)를 볼까. 이곳에는 전통 오페라 극장을 비롯해 콘서트홀, 그리고 수천억원대의 가치가 있는 아시아 현대미술 컬렉션을 품은 메머드급 현대미술관 M+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미완의 공간이지만 이곳에 설치된 M+ 파빌리온에서는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작가인 홍콩 출신 아티스트 삼손 영(Samson Young)의 순회전 <Songs for Disaster Relief>가 열리고 있다(오는 5월 6일까지). 오는 3월 27일부터 홍콩해양박물관에서 열리는 미국 작가 조지 콘도(George Condo)의 홍콩 최초 개인전 <Expanded Portrait Compositions>도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갤러리들의 면면을 보면 가고시안은 LA 출신의 제니퍼 가이디(Jennifer Guidi) 개인전, 콰이펑힌 아트 갤러리(Kwai Fung Hin Art Gallery)는 양치기 소녀 그림으로 유명한 중국 작가 아이쉬안(Ai Xuan), 푸에르타 로자(Puerta Roja) 갤러리는 스페인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로랭 마르탱 ‘로’(Laurent Martin ‘Lo’) 등을 각각 내세운다. 홍콩의 ‘아트 빌딩’으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H 퀸스(H Queen’s)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2016년 KIAF를 방문하기도 하 건축가이자 저명한 컬렉터 윌리엄 림(William Lim)이 설계한 이 건물에 입주한 페이스 갤러리는 나라 요시모토(Nara Yoshimoto)와 로이 할로웰(Loie Hollowell) 개인전을, 하우저 & 워스(Hauser & Wirth)는 마크 브래드처드(Mark Bradford) 개인전을, 데이비드 즈위너(David Zwirner) 갤러리는 독일의 사진작가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 전시를 아트 바젤 개막에 맞춰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H 퀸스 빌딩에는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서울옥션이 홍콩 상설 전시장이자 경매장으로 마련한 1백 평 규모의 SA+도 있는데, 현재 이곳에서는 개관전으로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작가 이우환과 일본의 스타 작가 구사마 야요이를 엮은 전시 <UFAN × Kusama>가 열리고 있다(3월 17일까지).

경매 현장과 프리뷰도 주목하라

아트 축제 기간에 빼놓지 말아야 할 행사로는 경매가 있다. 홍콩은 뉴욕, 런던에 이어 세계 3대 미술 경매 도시다. 아트 바젤 홍콩이 열리는 주간에는 항상 소더비(Sotheby’s), 크리스티(Christies), 폴리 옥션(Poly Auction) 같은 경매업체들이 세일에 나선다. 올해도 소더비에서는 자체 보유한 다이아몬드 컬렉션, 추정가가 홍콩달러로 4천만~6천만달러대인 건륭황제 시기의 꽃병, 조지 콘도와 피카소 같은 작가의 ‘대작’을 다수 선보일 예정이다. 홍콩 경매에 진출한 지 10년이 된 서울옥션도 새롭게 마련한 SA+ 전시장에서 오는 3월 29일 올해 첫 해외 경매를 연다. 단색화를 비롯한 한국 작가들의 다양한 회화뿐만 아니라 구사마 야요이의 ‘Pumpkin’ 같은 해외 주요 작가들의 작품도 출품된다. 주요 경매에 등장하는 ‘아이템’은 미술품 말고도 빈티지 시계, 희귀 와인 등 다양한데, 세계적으로 유명하거나 중요한 작품이므로 ’눈요기’만으로도 희열을 줄 수 있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은 미술 경매가 일반인은 접하기 어려운 폐쇄적인 행사라고 오해한다. 상당한 자본력과 구매 의지를 갖춘 아트 컬렉터들만이 경매장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것. 하지만 대부분의 아트 경매는 프리뷰 형식으로 전시를 개최하며, 경매 자체도 프라이빗 세일을 제외하면 누구에게나 공개한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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