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달 표면에 수천억 톤의 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확인되면서 달 탐사가 새로운 미래 사업 영역으로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수많은 우주 기업은 지구에서 달을 오가는 화물 운송 서비스를 구축하고, 빠르면 2026년부터 자체 개발한 ‘플렉스’로 달에서 택배 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 개봉한 다양한 SF 영화의 내용처럼, 인류가 우주로 이주하기로 결정하고 ‘셸터(shelter)’를 만든다는 식의 이야기도 더 이상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우주로 뻗어나가는 미래의 셸터까지는 상상하지 못하더라도 ‘집’은 대다수가 질 높은 삶을 누리기 위해 가장 신경 쓰는 곳이며, 시대를 대표하는 기술이나 사회, 경제적인 면이 가장 잔잔하게 반영되는 곳이기도 하다. 요즘 연기와 연출, 음악 등 모든 면에서 호평받고 있는 넷플릭스의 화제작 <성난 사람들: BIFF>에서도 주인공 앨리 웡이 자신의 모든 사회적 의미를 ‘집’ 인테리어에 두며, 이를 방해하는 모든 것에 ‘빡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녀가 아름답게 꾸민 집에서 편안하게 쉬지 못할 때의 ‘빡침’에 깊이 공감하게 될 정도다. 앨리 웡처럼 피곤에 지친 우리의 관심은 가열찬 하루를 보내고 나서 안락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고, 그래서 미래의 셸터는 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몹시 궁금하다. 그런 시점에 집을 둘러싼 공간 디자인 역사를 훓고, ‘모빌리티’의 미래를 그려보는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의 <홈 스토리즈> 전시는 ‘기술이 만난 미래의 셸터’를 상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전시 서막에 아이오닉 콘셉트카 ‘세븐(Seven)’을 통해 자동차가 이동형 셸터이자 집이 되는 미래상을 예시로 보여주는 이 전시에서는 파트너십을 맺은 비트라 뮤지엄의 ‘20개의 아름다운 인테리어’를 통해 지난 1세기에 걸친 주거 문화의 진화와 자유분방한 디자인 그룹 멤피스를 좋아한 칼 라거펠트의 컬렉션부터 아돌프 로스의 인테리어, 자크 타티의 <나의 아저씨> 속 현대식 빌라 영상까지, 지금까지 화제가 되고 있는 수많은 디자인 피스와 모형, 작품 사진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감상할 수 있다.
자연과의 교감, 리나 보 바르디부터 핀 율까지
모듈러 시스템과 기계화로 표현되는 모더니즘 개념이 1940년대(제 2차 세계대전 끝날 무렵) 주거 공간에 적극 반영되었고,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주거 공간에 자연을 유입시키는 현상이 나타났다. 자연적인 형태와 소재가 인기를 끌며 가구 역시 스칸디나비아 인테리어에 큰 영향을 받았다. 당시 자연적인 재료로 만든 유기적 형태의 가구는 모던 디자인을 인간적이면서 가정적으로 표현했다. 필자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자연과 기술’ 섹션에서 살펴볼 수 있는 주거 공간의 풍경이다. 예컨대 1940년대부터 덴마크 가구 디자인 분야를 주도해온 건축가 핀 율의 의자를 볼 수 있는데, 그의 의자 디자인도 완만한 곡선 형태의 낮은 지대로 이뤄진 덴마크의 지형이 반영된 것이다. 1941년 지은 핀 율 하우스 ‘오르드룹’에 관련된 사진도 흥미롭다. 핀 율이지은 뒤 직접 가구까지 골랐다고 전해지는 이 집에서 그는 거듭 가구를 교체해가면서 자신의 디자인을 실험했다고 한다. 이번 전시의 표지 사진에 등장한 이탈리아 출신의 여성 건축가 리나 보 바르디의 유리 집 ‘카사 데 비드로(Casa de Vidro)’의 모형도 볼 수 있다. “이 집에는 자연과 사물의 자연 질서 사이의 교감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담았습니다. 자연적 요소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력으로 자연 질서를 존중하고자 했습니다. 폭풍우와 비를 피하는, 완벽하게 봉인된 상자가 아닙니다.” (리나 보 바르디, 1953) 반세기 전 탄생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직까지 독보적인 여성 건축가 리나 보 바르디가 1953년 브라질 상파울루에 지은 카사 데 비드로는 큐레이터이자 아트 딜러인 그녀가 남편 피에트로 마리아 바르디와 함께 거주하기 위해 지은 집인데, 브라질 상파울루 지역의 차 농장 부지에 세웠다. 그녀의 말처럼 울창한 초목에 둘러싸인 환경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데, 언덕 위 10개의 기둥을 설치한 뒤 그 위에 유리 박스를 얹은 구조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원의 식물들이 집을 둘러 싸며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되는 것이다.
공동의 공간과 여성의 삶을 위한 비전
이번 전시를 위해 부산을 찾은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의 큐레이터 요헨 아이젠브란드는 1960년대 앤디 워홀의 실버 팩토리 미니어처를 가장 인상적인 전시 구간으로 꼽았다. 당시 워홀이 조명 디자이너 빌리 네임에게 부탁해 벽면과 천장에 은박지를 붙이거나 은색 스프레이 페인트로 칠했다고 한 부분까지 그대로 재현해 무척 정교하다. 1960년대 뉴욕 소호에 로프트 형태의 주거 방식이 등장했는데, 이런 로프트 타입의 거주지로 가장 널리 영향을 미친 곳이 앤디 워홀의 실버 팩토리다. 아파트이자 앤디 워홀과 슈퍼스타들의 만남의 장소. 당시 일과 삶을 결합한 인테리어와 공동의 공간과 삶이 함께하는 디자인이 이미 존재했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다. 실제로 앤디 워홀은 “은막의 여배우들이 실버 세트 안에서 사진을 찍었고, 함께 꿈을 꾸었다. 사실 실버는 나르시시즘을 대표한다”라는 말을 남길 만큼 이 팩토리는 그가 애착을 보인 장소였다. 실버 팩토리에서 이어지는 작품은 1926년 프랑크푸르트의 주거 단지 사업에 맞춰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성 건축가 마르가레테 슈테 리호츠키가 디자인한 ‘프랑크푸르트 부엌’. 주방을 혁신한 ‘프랑크푸르트 부엌’은 요리를 할 때 느끼는 피로를 줄이기 위해 근접 거리에 모든 것을 배치했고, 부엌이 독립된 구성을 갖추게 한 최초의 시도였다. 냄비 건조대는 바닥을 살짝 기울여 물기가 빠지게 했을뿐더러 싱크대 겉면은 파리가 가장 싫어하는 색을 연구해 푸른 회색으로 칠했을 만큼 디테일의 미학이 빼어나다. 지금의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식 부엌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스튜디오 스와인의 우주 속 셸터
전시의 마지막 하이트라이트는 듀오 디자인 그룹인 스튜디 오 스와인(Studio Swine)이 현대자동차의 모빌리티 비전 에서 영감받아 만든 설치 작품 ‘흐르는 들판 아래’가 마치 춤 추는 회화처럼 펼쳐지는 공간이다(작품에 현대자동차 ‘세븐’ 의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기도 했다). 자연의 아름다운 순간 을 전기에너지와 함께 기술로 재현한 이 작품은 물질의 제 4 상태로 일컬어지는 ‘플라스마(고체, 액체, 기체와는 다 른 물질 상태)’를 활용했으며, 작가가 스스로 ‘에퍼머랄 테크 (Ephemeral Tech)’라 명명한 기술(자연현상을 목격하는 것과 기술을 통해 가까운 감각을 재현하는 것)과 섬세한 작 품관을 감각적으로 반영했다. 현재로서는 인류의 유일한 셸 터인 지구를 상장해 푸른빛을 머금은 이 공간은 진공 상태의 네온 튜브에서 들리는 소리와 함께 별빛이 무리 지어 이동하 는 듯하면서도 푸른 새벽 들판 위 쏟아지는 빗줄기를 연상시 킨다. “연기도 있고 불빛도 있고 의자도 있지만, 우주를 유 영하는 듯한 환상적인 느낌이 들 겁니다. 우주에 있다 보면 시간과 공간감을 완전히 상실하죠. 건축가 버크민스터 풀러 가 지구를 ‘차가운 진공의 공간을 통과하는 지구라는 이름의 모빌리티’라고 언급했듯 사실 지구는 우주를 유영하는 셸터 기도 하고요.” 과학자와 예술가를 오가며 사유하는 듯한 스 튜디오 스와인의 알렉산더 그로브스(Alexander Groves) 는 “요즘엔 태양계를 벗어나 이동하는 모빌리티를 생각하고 있어요. 빛의 속도를 따라잡아야 하는데, 그걸 가능하게 하 는 이론을 읽고 있는 중이죠”라고 덧붙였다.
Interview with_ Vitra Design Museum
이상적인 미래의 셸터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 삶의 솔루션을 고민한다는 면에서 현대자동차와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의 협업은 ‘좀 더 아름답고 기능적인 미래의 셸터’를 상상하게 한다. 2년여 전에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에서 막을 내린 전시의 영문 도록 서문에서 재스퍼 모리슨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어느 정도 집에서 생활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정의한다고 덧붙이고 싶다. 좋은 물건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보다 좋은 방을 만드는 것이 더 복잡하다.”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의 큐레이터 요헨 아이젠브란드(Jochen Eisenbrand)와 부관장 사브리나 한들러(Sabrina Handler)에게도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과 함께한 이번 전시와 집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Q1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은 현대 모터스튜디오와 지속적으로 파트너십을 맺어왔는데, 이번 전시에서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이 생각하는 현대자동차의 역할은 무엇이었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요?
2 현대자동차와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이 함께한 <홈 스토리즈(Home Stories)> 전시를 알리는 포스터. 여성 건축가 리나 보 바르디의 뒷모습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3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인테리어를 다룬 공간에서는 인테리어의 대격변에 대한 전시가 펼쳐진다. 화려하고 장식적인 인테리어부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다양한 트렌드를 보여준다.
4 아이오닉 콘셉트카 세븐의 라운지형 내부 공간은 마치 집 안 거실처럼 편안하다.
5 스튜디오 스와인(Studio Swine)이 현대자동차의 미래 모빌리티 비전에 영감받아 만든 몰입형 설치 작품 ‘흐르는 들판 아래’는 마치 우주에 무중력으로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6 전시에서는 이탈리아 출신의 여성 건축가 리나 보 바르디의 유리 집 ‘카사 데 비드로’의 모형도 볼 수 있다.
7 ‘자연과 기술’ 섹션에서 소개하는, 덴마크 가구 디자인을 주도한 건축가 핀 율의 의자와 핀 율 하우스에 관련된 사진도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