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스마트폰으로 진화한 이래 여러 기술 · 문화적인 발전과 이에 따른 파급효과는 가히 놀라울 정도다. 이러한 광풍 같은 흐름 속에서 최근 더욱 절실해진 건 다름 아닌 ‘손의 힘’이다. 디지털 기기가 아무리 발전을 거듭하더라도 손으로 ‘직접 접촉(touch)’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를 통해 디지털 기기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정신을 바로 세워주는 도구로 탈바꿈한다.
“아날로그적 기반 없는 디지털 세계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세계”
지난 10월 초 한국을 찾은 독일 시계 브랜드 크로노스위스의 창립자이자 시계 제작자인 게르트 랑(Gerd. R. Lang)이 “기계식 시계는 모든 과학과 기술력의 집약체”라고 말한 것처럼 완벽을 향한 시계 제작자들의 행보는 놀라울 정도다. 보다 정밀하고 정확한 부품, 케이스의 제작과 조립을 위해 좁쌀만한 나사 하나도 광학 현미경과 레이저로 1마이크론의 오차까지 잡아낸다. 실리콘, 티타늄, 지르코늄, 세라믹 등 과거에는 구현하기 힘든 소재를 개발해 제작하고 예거 르쿨트르나 IWC처럼 일단 시계가 완성되면 여러 분야에 걸쳐 1천 시간 이상의 테스트를 거쳐 세상에 선보이는 것이 아날로그적인 기계식 시계의 실체다.
그러나 이런 시계 제작에 있어 몇백 년 전이나 2010년이나 다름없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람의 눈과 손이다. 스위스의 전통적인 시계 생산지인 발레드주에 자리한 브레게, 바쉐론 콘스탄틴, 예거 르쿨트르, 블랑팡 등 몇 세기를 이어온 브랜드의 공장을 직접 방문해보았다. 자동화의 편리함도 가미되었지만 결국 부품이 1천2백여 개나 되는 정밀한 시계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 직접 조립한다. 생산 설비 자동화가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을 손이 해내고 있는 것이다. 시계 없이도 시간을 알 수 있는 시대에 왜 그런 일들이 계속되고 있고, 그 결과물이 각광받고 있을까? 시계를 위해 일생을 바친 게르트 랑은 이러한 시계의 매력을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은 클래식”이라 말한다. 지금의 시계는 감성적인 부분이 다분히 크다. “물체에 인간적인 조작을 하지 않는다면 그 물체는 살아갈 수 없다”라는 시계 제작자 필립 뒤푸르(Philippe Dufure)의 말처럼 기계식 시계는 크라운을 돌려 태엽을 감는 순간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 변신하는 마법과도 같은 부분이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시계를 후손에게 물려줄 때 느끼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상상해보라.
패션 부분도 그렇다. 이제 뉴욕, 밀라노, 파리에 직접 가지 않아도 유튜브, 트위터, 팟캐스트 등 무선망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쇼를 감상하고 정보를 얻고 구입까지 할 수 있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타이밍에 공급한다는 원칙(Time is Everything)’을 세워 기획, 조달, 판매 외에 자사 공장은 보유하지 않고 전 세계 20곳, 7백여 개 회사의 공급자로부터 구입해 디자인을 시작한 지 3주 만에 제품을 매장에서 판매하는 H&M(헤네스 앤드 모리츠)처럼 시시각각 바뀌는 유행 따라 저렴한 가격에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패스트 패션이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지구 어딘가에서는 옛날 방식 그대로 가죽이나 천을 다듬고 재단해 일일이 구멍을 뚫고 실을 끼워 손바느질하는 공정을 통해 생산되는 옷과 구두와 가방이 여전히 존재한다. 르 사주, 르 마리에, 메종 미셸 등과 같은 샤넬이 보유한 오트 쿠튀르 공방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 1백 년 전의 도구로 옛날과 다름없이 자수를 놓고 깃털을 붙이고 모자를 만든다. 얼마 전 한국을 찾은 이탈리아의 남성복 브랜드 키톤의 장인들도 천을 자르고 안감을 덧대는 작업부터 몸의 굴곡을 그대로 살려 맞추는 일까지 일일이 손으로 해낸다. 생산성이 절대 좋을 리 없는 비효율적인 과정이지만, 이를 경외하고 찾는 사람들이 있는 한 문을 닫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무형문화재급 장인이 모인 공방은 사라질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라도 수요를 만들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몇 주간 서울패션위크를 앞둔 한국의 패션 디자이너들을 만났다. 크고 작은 작업실의 생산 설비는 천차만별이었지만, 소재에 몰입하고 재단과 패턴을 직접 해 오트 쿠튀르에 버금가는 손맛이 살아있고 시대를 초월한 클래식을 추구하는 것이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디지털 시대에 이러한 손의 힘, 장인의 정신을 되돌아보는 책이 번역, 발간되는 것도 흥미롭다. 아름지기재단이 엮은 <우리 시대의 장인 정신을 말하다>에서 디자이너 정구호는 이렇게 말한다. “장인에게는 미장센이 중요하다. 장인의 물건은 전승받은 기술과 장인 본인의 응용, 고객의 요구가 종합되어 하나의 미장센을 이룬 것이다. 물건이건 예술품이건 본인이 속한 장르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장인이다.” 같은 책에서 사진가이자 악당(樂黨) 이반의 대표 김영일은 “기술력을 이용해서 좋은 음반을 만들고, 그 음반을 접한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찾게 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의미의 연주가 아니다. 진정한 음악은 듣는 이와 음원이 만나는 곳에 있다. 음악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음악은 연주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매개체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지난 10월 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키스 자렛(Keith Jarrett) 트리오의 공연이 그랬다. 사실 예순이 훨씬 넘은 그들의 음악은 절정을 이룬 1980년대 녹음한 음반 <스탠더드 볼륨(Standards Vol. 1, 2)> 연작이나 <스탠더드 라이브(Standards Live)>가 더 듣기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수 개월 전 시작한 예약은 인터넷 예매의 힘으로 개시 10분 만에 R석 매진, 30분 내 전 석 매진이라는 전설을 낳았고, 실제 공연 당일에도 빈자리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관객들을 보노라니 놀라울 뿐이었다. 첫 내한 공연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앙코르까지 거의 1백여 분간 이어진 공연 내내 악보 없이 오래 단련된 손의 기억으로 환상의 호흡을 맞추는, 약간의 실수가 있더라도 그것이 오히려 매력적인, 직접 마주함으로써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주었다. 여기서 최첨단 음향 기술은 그다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미술에서도 장인 정신이 부활하고 있는 듯하다. 1917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샘’이란 제목으로 ‘R MUTT’란 사인을 한 변기를 앙데팡당전에 출품한 이래 대량생산된 기성품을 재생산하는 팝아트처럼, 수공이 강조되는 작품보다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개념 미술이 현대미술의 근간을 이뤘다. 하지만 미술에서는 오랜 시간과 공을 들이는 것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영은미술관이 개관 10주년으로 지난 10월 2일부터 12월 12일까지 열고 있는 초대전의 작가 강형구는 링컨, 오드리 헵번, 마릴린 먼로, 반 고흐 등 옛 인물의 초상을 통해 시대를 투영해낸다. 극도로 사실적인 그의 작품을 보고 사진을 확대해도 되지 않은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강형구는 “그대로 재현해낸 극사실 기법을 차용하긴 하지만 사진이 담을 수 없는 허구이고, 상상력에 의한 산물”이라고 말한다. 덕분에 인간의 내면성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한 극사실 기법을 구현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주요 도구인 에어 브러시로 어깨에 이상이 올 정도로 수일 동안 수십만 번 움직여야 완성된다.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The Corrosion of Character)>, <뉴 캐피털리즘(The Culture of the New Capitalism)>의 저자인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은 근간 가장 공을 들인 책이라는 <장인(The Craftsman)>에서 이렇게 말한다. “장인 정신(craftmanship)을 산업사회의 도래와 더불어 시들어버린 생활 방식으로 이해할 때도 있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장인 정신은 면면히 이어지는 인간의 기본적 충동이며, 일 자체를 위해 일을 잘해내려는 욕구다.” 그리고 모든 일에 장인 정신이 살아 있다고 말한다. 그는 손과 머리의 긴밀한 관계에 주목하는데, 결국 장인 정신은 현대 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이다. 이 책을 옮긴 김홍식은 프롤로그의 타이틀로 ‘장인, 그들은 언제나 일에서 인간을 봤다’라고 썼다. 결국 디지털도 긴 역사 속에 비추어 보면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아날로그든 디지털이든 그 구분의 의미보다는 그 안에서 사람의 이성과 감성이 손과 손을 맞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앞에서 언급한 니그로폰테 교수는 지난여름 ‘2010년 테크놀로지 컨퍼런스’에서 “종이책은 죽었다”고 말하며 책이 5년 내에 소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말 과연 그렇게 될까? 아마존의 킨들과 애플 아이패드, 그리고 연이어 출시될 태블릿 PC를 통해 볼 수 있는 전자책은 이미 종이책의 판매고를 앞서기 시작했지만 결코 종이책에 대한 사람들의 애착이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쇠퇴 일로를 걷다가 역사 박물관의 유물로 마주하게 되는 때가 오겠지만 적어도 지금 생각은 그렇다. 지난주 다녀온 전남 해남 미황사. 땅끝 마을에 자리한 절의 대웅전은 비와 바람에 채색이 바래 나무 색을 그대로 드러낸 채 1천 년 넘게 건재하게 서 있었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었던 이 절을 아름답게 지켜낸 주지 스님 금강은 템플 스테이를 하러 온 뜨내기들을 위해 따뜻한 녹차를 대접했다. 그리고 절간 이야기를 담은 책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을 주었다. 그 종이책을 귀한 선물로 만든 것은 밤을 새워가며 책 첫 장에 자그마치 80여 명의 이름과 덕담을 일일이 붓글씨로 써서 인주까지 찍어낸 정성이었다. 종이책이니 가능한 일이다. 디지털 도구를 통해 우리의 생활은 점점 편리해지고 있다. 그러나 비트를 통해 구체화된 문자가 표현해내는 의미의 가치는 더 아름답다. 이 시대 디지털 생활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주는 아날로그적 정신은 이렇게 숨 쉬고 있고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