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꾀하는 남프랑스식 창조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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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07, 2018

글 고성연

faces of Cote d’Azur
남프랑스 코트다쥐르에서 영혼까지 정화시켜줄 것 같은 지중해의 터쿼이즈 블루를 바라볼 때 누군가는 부러움 섞인 푸념을 한다. “이곳 사람들은 조상 잘 둬서 좋겠다”고.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인기 많은 관광지인 게 놀랍지 않을 만큼 코트다쥐르의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은 물론 출중하다. 하지만 이 지역이 하나의 브랜드가 된 데는 자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콘텐츠를 개발해온 창조적 행보도 큰 역할을 했다. 도시와 마을마다 전혀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올드 & 뉴가 적절히 조화된 팔색조 매력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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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로 ‘푸른 해안’이라는 뜻을 지닌 코트다쥐르(Co^te d’Azur). 니스, 칸, 생트로페, 모나코, 앙티브 등 프랑스 남동부의 지중해 해안을 따라 펼쳐져 있는 인기 만점 도시들이 자리한 지역을 부르는 별칭이다. 19세기 말 프랑스 소설가 스테판 리에자르(Ste´phen Lie´geard)의 책에서 연유된 시적인 이름이다. 다른 유럽인들 사이에서는 ‘프렌치 리비에라(French Riviera)’라는 영어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코트다쥐르를 포근하게 감싸는 햇살을 바라보면서 맞이하는 아침의 희열을 찬양한 이는 지겨울 정도로 많다. 일례로,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미술 거장 앙리 마티스는 “매일 아침 이 빛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걸 깨닫자 나는 내 행운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행복했다”면서 감격에 겨워했다고. 산업화의 거센 물살 덕에 잿빛 하늘이 더 익숙한 프랑스 북부 도시에서 자란 마티스는 결국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고 창조적 영감을 쏟아내던 남쪽 땅에 묻혔다. 오늘날에도 코트다쥐르 지역은 인기가 많다. 볼거리 넘친다는 프랑스에서 파리에 이어 제2의 관광지로 위세를 떨치고 있으니, ‘전국구’를 넘어 가히 ‘세계구’ 수준의 인기라 하겠다. 단지 눈부신 풍광 덕은 아니다. 한 번의 방문으로는 만족하지 못할 만큼 강렬한 코트다쥐르의 매력은 천혜의 경관만이 아니라 대자연의 은총 속에 뿌리내려온 문화 예술적 자산의 풍부함과 다채로움에서 비롯된다. 자동차로 30분~1시간이면 오갈 수 있는 이 지역의 작은 도시들은 남쪽의 여유로운 정취를 공유하면서도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처럼 저마다의 분위기와 스토리텔링을 뽐낸다. 그렇다고 유서 깊은 역사만 내세우는 ‘민속촌’에 다녀온 느낌도 아니다. 전통 어린 낭만적 정서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의 감성과 맞닿을 수 있는 요소를 조화롭게 심어나가는 창조력이 코트다쥐르라는 브랜드 파워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올드 & 뉴의 어우러짐 속에 매력을 더해가고 있는 네 곳을 소개한다.
도시 그 자체로 ‘종합예술’, 니스의 풍부한 매력
해마다 2월에 열리는 세계 3대 카니발로 유명한 니스(Nice)는 흔히 유럽의 문화 수도로 일컬어지는 마르세유와 더불어 남프랑스를 상징하는 항만 도시이자 유명 휴양지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워낙 니스를 좋아한 나머지 해변을 따라 ‘영국인의 산책로’라는 뜻의 ‘프롬나드 데 장글레’를 만들었는데, 3년 전 한 기업의 후원으로 중국인 단체 관광객 6천여 명이 방문해 3.5km 길이의 이 산책로를 가득 채운 장면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요즘도 작가, 미술가가 많이 찾고 머물지만 니스는 많은 예술인들의 창작 터였고, 유적지와 상당수의 의미 있는 미술관, 박물관을 거느린 문화적 보고다. 다수의 유적지가 위치한 시미에 지구에는 니스에 머물면서 수많은 작품을 남긴 마티스를 기리기 위한 마티스 미술관이 있고, 30분 거리의 마을 방스에 있는 로제르 성당, 유대인 출신으로 남프랑스에 정착한 대가 마르크 샤갈의 성서 연작 시리즈를 접할 수 있는 샤갈 미술관은 미술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필수 코스’로 대접받는 장소다. 그뿐만이 아니다. 1990년에 설립된 니스 근현대미술관(Musee d’art Moderne et d’art Contemporain)에서는 이브 클랭, 니키 드 생팔 등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하는 다양한 아티스트의 작품을 접할 수 있다. 동시대 미술가들의 참신한 기획전이 개최됨은 물론이다. 인기 관광지임에도 현재에 자족하지 않는 니스의 진화는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다. 지중해의 ‘친환경 도시(green city)’가 되겠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녹지 조성에 앞장서면서 가든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전기 버스와 트램을 운행하는가 하면 전통에 바탕으로 둔 지역 요리를 현대적으로 발전시키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이 지역 일대에서 재배한 싱싱한 농산물을 주재료로 삼는 ‘니사르 요리(Cuisine Nissarde)’ 프로젝트가 그 결실 중 하나인데, 해당 레이블이 새겨진 스티커가 붙어 있는 ‘인증된’ 레스토랑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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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들이 사랑한 성곽 도시 생폴 드 방스의 조용한 진화

프랑스에서 다섯 번째 규모인 활기 넘치는 니스와 달리 20km 정도 거리의 인근에 자리한 생폴 드 방스(Saint-Paul de Vence)는 조용하고 한적한 작은 마을이다. 중세 요새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 같은 풍경을 지닌 이 고요한 성곽 마을은 샤갈이 인생 후반부 20여 년을 보내면서 ‘제2의 고향’으로 삼은 곳이다. 그래서 샤갈은 원래 니스가 아니라 생폴 드 방스에 미술관을 짓고 싶어 했다는 얘기가 전해지는데, 그의 묘지만큼은 이곳에 남겼다. 샤갈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인과 인기 스타의 사랑을 받은 이 매혹적인 마을은 요즘에도 셀럽들의 은신처 같은 별장이 들어서 있다. 그래서 주민은 3~4천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지만, 미슐랭 레스토랑도 있고 럭셔리 호텔도 있다. 무엇보다 생폴 드 방스에는 해마다 15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명물’이 있다. 프랑스 최초로 근현대미술품을 소장한 사립 미술관의 효시인 마그 재단 미술관(The Maeght Foundation)이 바로 그것이다. 1964년 생폴 드 방스 외곽의 언덕에 문을 연 이 미술관은 상업 화랑을 운영하던 마그 부부가 호안 미로, 알베르토 자코메티, 조르주 브라크 등 당대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동시대 아티스트의 창조적 놀이터로’ 만든 예술의 전당이다. 20세기 대가들의 작품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데다 그들이 몸소 설계나 창작 등의 방식으로 공간 탄생에 참여했다는 독특한 배경 덕분에 사립 미술관임에도 국보급 공공재로 대접받는 흔치 않은 사례이기도 하다. 지난 2014년 마그 재단 미술관 탄생 50돌에 코트다쥐르 지역의 내로라하는 국공립 미술관이 일제히 관련 행사나 전시를 마련하면서 축하했다는 사실이 그 방증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마그 재단 미술관이 가치 높은 소장품에만 기대지 않고 ‘살아 있는 예술’에 초점을 맞춘 창립자 부부의 정신을 기리고 지속적인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현존 작가들과 꾸준히 협업해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봄(3월 24일~6월 17일)에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한국 추상 작가 이배(Lee Bae) 개인전 <Plus de Lumie`re(More Light)>가 예정돼 있다.

미식과 예술의 고장으로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 무쟁

남프랑스에서 미식의 도시라 하면 주로 리옹을 떠올린다. 하지만 알 만한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리옹 말고도 또 다른 ‘애정의 대상’이 있다. 영화제로 유명한 칸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무쟁(Mougins)이다. 무쟁 역시 피카소, 크리스챤 디올 등 쟁쟁한 문화 예술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지만 동화 속 풍경처럼 앙증맞은 마을인데, 스타 셰프 알랭 뒤카스를 비롯해 프랑스 셰프들의 사관학교 같은 역할을 담당해왔으며, 그래서인지 웬만한 레스토랑에 들어가도 흐뭇한 포만감을 줄 만한 미식 타운이다. 지난 10여 년에 걸쳐서는 미식 축제인 레 제투알 드 무쟁(Les Etoiles de Mougins)으로도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3년 전 세상을 뜬 프로방스식 요리의 거장이자 전설적인 레스토랑 물랭 드 무쟁(Le Mouling de Mougins)을 경영한 로제르 베르제(Roger Verge´)를 기리기 위해 지난 2006년 만든 행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남프랑스의 스타 도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아왔지만, 미식 축제를 계기로 무쟁이 점점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고 말한다. 정적인 분위기가 감돌기는 하지만, 느린 듯 뜻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아티스트의 아틀리에와 갤러리가 많기로도 유명한 이곳에는 7년 전 흥미로운 면면을 갖춘 작은 미술관도 생겼다. 무쟁을 사랑해 마지않던 한 영국인 아트 컬렉터가 중세풍 저택을 개조해 만든 MACM(The Mougins Museum of Classical Art)이라는 미술관이다. 400㎡ 규모의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고대 그리스, 로마, 이집트 유물부터 무쟁에서 말년을 보내고 생을 마친 피카소를 비롯해 샤갈, 피카비아, 앤터니 곰리 등 20세기와 21세기 아티스트의 작품까지 두루 갖춘 컬렉션이 들어서 있어 눈길을 끈다. 피카소의 사진을 다수 보유한 앙드레 빌레르 사진 미술관(Muse´e de la Photographie Andre´ Villers)에서는 과거의 찬란한 자취도 엿볼 수 있지만, 미치 엡스타인처럼 뉴욕에서 활동하는 동시대 인기 사진작가들의 기획전도 접할 수 있다.

세련된 낭만의 절정, 앙티브

피카소 하면 럭셔리 요트가 고고한 학의 무리처럼 늘어서 있는 항구도시 앙티브(Antibes)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피카소의 자취는 남프랑스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지만, 그의 작품을 2백45점이나 소장한 앙티브 피카소 미술관이 터를 잡고 있는 곳이어서다. 원래 로마의 도시였던 앙티브는 15세기 프랑스령이 되기 전까지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해왔는데, 피카소 미술관은 요새로 지은 그리말디 성(城)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이었다. 1946년 초대를 받은 피카소가 이 성을 아틀리에 삼아 머물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고, 훗날 그가 앙티브 시에서 명예 시민 칭호를 받자 결국 이곳은 피카소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해마다 이 미술관을 찾는 이들이 10만 명이 훌쩍 넘으니 현명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코발트빛 바다를 눈앞에 둔 앙티브의 작은 만에서 바르셀로나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공공 미술 작가 하우메 플렌자(Jaume Plensa)의 8m 높이 설치 작품을 보노라면 20세기와 21세기를 잇는 ‘스패니시 커넥션’이 느껴지는 듯하다.
문학을 좋아한다면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 때문에 앙티브를 찾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앙티브의 수려한 해변인 주앙 레 팽(Juan les Pins)에 자리한 벨레스 리브 호텔에 살았던 피츠제럴드는 프렌치 리비에라의 전성기를 배경으로 지중해의 운치를 시적으로 담아낸 <밤은 부드러워>라는 소설을 집필하기도 했다. 물론 앙티브의 황금기는 21세기에도 펼쳐지고 있다. 워낙 빼어난 자연경관에 중세의 성벽을 비롯한 문화유산도 풍부하게 거느리고 있지만 스포츠 행사, 각종 컨퍼런스 등을 활발히 유치해 고부가가치 마이스(MICE) 산업의 수혜를 누리는 도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적으로 영리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앙티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낭만의 미학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장미 도시’로 명성을 쌓아왔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재즈 페스티벌인 ‘쥐앙 재즈 페스티벌’을 반세기 훌쩍 넘게 이어오고 있으니 두말해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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