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노멀 시대를 맞이하는 스마트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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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05, 2014

에디터 고성연

“디지털 시대의 유리잔은 절반밖에 차지 않았다.” 미래학자 피터 힌센은 인류의 디지털 여정이 절반을 지났을 뿐이라며 나머지 절반의 여정에서는 디지털이 ‘새로운 일반화’, 즉  ‘뉴 노멀’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렇다고 아날로그에 대한 애정을 애써 버릴 필요는 없다. 선입견을 버리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자연스러운 어우러짐을 체험하는 건 생각보다 더 즐겁고 편안할 수 있으니까. 모든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요즘, 편견 없는 시선이야말로 스마트 라이프스타일의 첫걸음이 아닐까.


모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는 20대 후반의 김혜정 씨는 퀴퀴한 종이 내음, 그리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접하는 특유의 감촉과 소리를 몹시도 사랑하는 종이 책 옹호자다. 유난히 책의 물질성에 애정을 쏟아온 그녀가 최근 확연히 달라진 면모를 드러냈다. 일단 중고 아이폰을 판 돈에 약간 더 보태 태블릿 PC 아이패드 에어를 마련했다. 원래는 아이패드 미니를 선호했지만 새로 나온 에어는 미니와 무게 차이가 별로 없었기에 망설임 없이 골랐다. 워낙 책을 많이 보는 만큼 가장 먼저 한 일은 교보문고 e북을 차곡차곡 디지털 서재에 저장하는 일이었다.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채우듯, 은근한 재미가 솟구쳤다. 필요한 부분은 형광 펜으로 표시해놓으니 언제 어디서라도 기획 아이디어에 활용할 수 있을 듯했다. 여기에 입소문이 파다하게 난 브랜드인 로지텍의 무선 키보드를 사서 연결하니 어딜 가나 ‘모바일 오피스’를 대동하는 셈이 됐다. 데이터 요금 폭탄을 피하기 위한 방비책도 세심하게 마련해뒀다. 국산 브랜드의 스마트폰을 무제한 요금 패키지와 함께 저렴하게 구매해 와이파이 존이 아닌 곳에서도 두려움 없이 아이패드를 꺼내 들 수 있는 밑거름을 다져놓은 것이다. 무제한 요금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기에 스마트폰을 단말기 삼아 유선이나 무선 인터넷 없이도 얼마든지 데이터를 쓸 수 있는 ‘테더링(tethering)을 활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스케줄을 관리하고 아이디어를 메모하는 도구로 요즘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무료 앱 ‘솜노트’도 내려받아 설치해두니 이처럼 편한 세상이 없는 듯했다. 이 메모 앱은 1GB의 무료 첨부 공간, 간단하게 그림을 그려 노트에 첨부하는 스케치 기능 등 다양한 장점이 있어 태블릿 PC에 기본적으로 설치돼 있는 e메모장보다 재미도 더 쏠쏠하고 업무 효율성도 월등했다.
경계의 벽이 허물어지는 ‘빅 블러’ 세상, ‘디지털’은 어렵다는 편견을 버려라
사무실과 바깥 세상, 집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이러한 변화는 김 씨로 하여금 디지털 세계에 대한 편견을 버리게끔 만들었다. 경계의 벽이 무너지면서 세상을 이루는 요소들이 융화돼나가는 현상을 가리키는 ‘빅 블러(Big Blur)’ 세상의 논리를 터득하게 된 것이다. 빅 블러 시대에는 공간의 경계만 무너지는 게 아니다. 사는 자와 파는 자의 경계, 상품이 될 수 있는 대상의 경계, 스마트폰, 카메라, MP3 플레이어 등 기기들 간의 경계, 현실과 가상의 경계…. 수많은 경계의 틀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미래학자 피터 힌센은 <뉴 노멀>이라는 저서에서 기술과 경영의 경계가 강도 높게 뒤섞이는 시대를 예고하며 지난 25년의 세월이 소비자에게 첨단 기술을 제공한 기간이었다면 앞으로 다가올 25년은 모든 소비자가 일상에서 기술을 ‘똑똑하게’ 사용하는 기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른바 ‘뉴 노멀(the new normal)’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의 급물살에 휩쓸려 정신을 차릴 틈이 없다며 저항하는 이들도 꽤 많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동인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들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핑계’를 대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듯이 손쉽고 친근한 데다 실속과 재미까지 갖춘 서비스와 상품도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나친 편견만 지니고 있지 않다면 이러한 생활 밀착형 서비스를 받아들이는 데 따른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그다지 많이 유발되지는 않는다. 물론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다고 해도 생산적인 몰입에 방해가 되는 불필요한 디지털 요소를 굳이 생활 속으로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모두가 당연시하는 ‘뉴 노멀’의 흐름에서 심하게 도태되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면 적어도 편견의 파도에 스스로 휩싸일 이유도 없지 않을까.
스포츠와 피트니스계의 신기원을 열고 있는 ‘뉴 노멀’ 기기들
최근 온 국민을 환희와 실망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었던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지구촌 축제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이나 후원 기업들의 기술력 경쟁은 더 이상 따끈따끈한 뉴스거리가 아니다. 체조 종목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학선 선수가 프리 스타일 모굴에 출전한 최재우 선수에게 공중회전 동작 자세를 촬영해 교정법을 전수하는 모습 같은 건 흔하디흔한 광경이 됐다. 미국 프리 스타일 스키 팀은 ‘Coach’s Eye’라는 앱을 활용했다. 공중회전 동작을 할 때 다양한 각도에서 비디오 촬영을 한 뒤 분석하고 전송하는 방법인데, 패트릭 드닌(Patrick Deneen)이라는 선수의 아버지이자 코치인 팻 드닌은 “우리들의 지도 방식을 바꿨다며”면서 이 앱을 예찬했다. 슬로 모션 카메라를 이용해 경쟁 상대의 동작과 비교, 분석함으로써 기술 교정에 보탬이 되는 ‘우버센스(Ubersense)’는 미국과 캐나다 대표 팀이 애용한 앱이다. 일상에서도 디지털 파워는 급속도로 커져가고 있다.
특히 웨어러블 기기(wearable device)의 상승세는 심상치 않다. 이미 상당수의 팬을 확보한 조본(Jawbone)의 ‘UP 리스트밴드’에 이어 얼마 전 한국 시장에 진출한 ‘핏비트(fitbit)’ 등 스마트 헬스 케어 브랜드들은 이러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핏비트는 지난 한 해 동안 미국 액티비티 트래커(1일 활동량을 측정, 기록하는 기기) 시장점유율 67%를 차지한 브랜드다. 대표 제품인 스마트 팔찌 ‘핏비트 플렉스(fitbit flex)’는 일일 누적 걸음 수, 칼로리 소모량, 이동 거리, 수면 효율 등을 기록해주는데, 스마트폰을 통해 이러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 팔찌 위에 장착된 5개의 LED 램프는 목표를 설정해두면 달성률을 표시해준다. 가볍게 손목에 차거나 클립형으로 옷에 꽂을 수 있는 핏비트의 제품은 튀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패셔너블하다는 장점도 갖추고 있다.
‘사물 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의 힘
이러한 스마트 기기의 인기는 무엇보다 편하고 재미있는 속성, 그리고 ‘소통’이 가능한 덕분일 것이다. 생활 속 사물들이 모두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는 ‘사물 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는 주장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바야흐로 사물들이 실시간으로 사람에게 피드백을 제공하고 심지어 쌍방향의 ‘소통’까지 시도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는 얘기다. 웨어러블 기기는 아니지만 오랄-비 블랙 7000과 같은 전동 칫솔도 ‘소통의 미학’으로 부각되는 사례로 꼽힐 수 있다. 칫솔질은 너무 세게 해도, 너무 약하게 해도 안 된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제어를 잘 못하는 이들도 많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양치질을 할 때 이 전동 칫솔은 제대로 이를 닦고 있는지를 액정 화면을 통해 알려준다. 잇몸에 지나친 힘이 가해지면 본체에 붉은 램프가 켜지며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또 운동화에 센서가 달려 거리, 속도 등 다양한 지표를 측정해주는 나이키+와 같은 제품도 나와 있다. 이처럼 간편하면서도 실용성 돋보이는 생활 밀착형 기기도 있지만 여기에 감성을 더한 소통은 더욱더 매력적이다. 필립스가 선보인 스마트 조명 ‘휴(hue)’는 인터랙티브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에 온기를 더한 예다. 저전력, 고효율, 친환경, 그리고 긴 수명까지 갖춘 이 LED 조명은 전구 색상을 상황에 맞도록 변화무쌍하게 바꿀 수 있으며 원하는 시간에 자동으로 점등과 소등을 할 수 있게 하거나 일정 시간만 켜지게 하는 타이머 기능 등 온갖 지능적인 기능을 뽐낸다. 안드로이드 폰이든 아이폰이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로 간편하게 원격 제어할 수 있다. ‘감성 소통’이라는 이점이 있으니 지구촌의 사용자들이 휴와 연동할 수 있는 앱을 자유자재로 만들어 공유하는 ‘커뮤니티’도 발달하게 운영된다. 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한 와인 바 겸 레스토랑인 라바트는 휴를 설치해 그날의 감성과 분위기, 또는 음악에 따라 조명의 색이 바뀌는 ‘카멜레온 공간’을 실현하고 있다.
‘호모스마트쿠스’의 진화는 인간의 창조력까지 아우를 수 있을까?
고도의 지능에 감성을 덧댄 소통까지 가능케 하는 ‘스마트 & 인터랙티브’ 생활 방식이 보편화되는 뉴 노멀의 시대에는 과연 어떤 일까지 가능해질까? 일단 스마트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인간의 손발을 자유롭게 한다’는 장점이 핵심 화두인 듯하다. 제임스 윌슨이라는 학자의 글을 통해 ‘웨어러블 혁명’에 대해 다룬 경영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2013년 9월호를 참조하자면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손목에 키보드와 디스플레이를 프로젝션 방식으로 보여주는 첨단 암 밴드를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삼성전자에서는 스마트 워치인 ‘갤럭시 기어’를, 구글에서는 ‘구글 글래스’를 이미 선보였고, 애플에서도 조만간 ‘i워치’를 내놓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의견은 엇갈린다. 스마트폰이 있는데 굳이 시계까지 필요하냐는 회의론자도 있는가 하면 낙관론자도 있다. 한 샴페인 브랜드 관계자는 “파티를 많이 주최하다 보니 손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게 정말 중요하게 느껴진다”며 “와인 잔을 들고 스마트폰을 보다가 잔을 깨뜨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스마트 워치가 정말 기다려진다”라고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윌슨은 인간의 생리학적 변화 감지를 바탕으로 한 데이터 분석과 수량화된 피드백 전달 기능을 갖춘 웨어러블 기기의 역학을 가리켜 ‘피지오리틱스(physiolytics)’라고 불렀다. 윌슨을 비롯한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를 통한 ‘빅 데이터’ 환경이 구축되면 직장에서도, 일상의 삶에서도 생산성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다고 전망한다. 예컨대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피로도’를 모니터링해주는 센서가 작동해 과로에 대한 견제의 신호를 받을 수 있고, 스마트폰을 하루에도 1백 번도 넘게 확인해야 하는 직업군의 일꾼들에게는 낭비하는 시간을 훨씬 더 줄여줄 수 있는 것이다. 전기 생리학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심지어 정신의 영역에까지 파장을 끼칠 수 있을 듯하다. 2009년 세상에 선보인 EEG(뇌파 전위 기록) 기능을 활용한 멜론 헤드밴드는 그 선구자다. 이 머리띠를 하면 뇌파 추적 기능이 작동해 인간이 정신적으로 집중하는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이 진화를 거듭해 저마다 가장 창의적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순간들을 알아낼 수 있는 ‘혁신’이 이뤄진다면 그야말로 뉴 노멀 시대에 획을 그을 수 있지 않을까.
경계 너머를 보는 유연함이야말로 진정한 진화
그러나 이해관계에 얽힌 사업자가 아닌 이상은 굳이 스마트 세상의 미래를 미리 걱정하거나 기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기술의 발달이나 한계는 자주 인간의 예측을 벗어나기 마련이니까. 그보다는 스트레스 없이 기운을 북돋워주고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방식으로 유연하게 ‘디지털 라이프’를 즐기면 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벽을 세우지 않고 그냥 열린 마음으로 ‘경계 너머’를 바라보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황혼기를 맞아, 어쩌면 ‘고루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는 풍경화에 부쩍 몰입하면서도 그 풍경을 아이폰을 활용한 멋진 드로잉 솜씨로 풀어내는 ‘반전’을 자연스럽게 펼쳐내는 영국의 위대한 노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처럼 말이다. 장르, 도구의 경계는 물론 세대나 나이 ‘따위’의 틀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의미 있는 즐거움에 심취하는 호크니의 말년이야말로 인간의 바람직한 진화를 투영하는 게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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