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찾아온 비엔날레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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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 2020

글 고성연 | 이미지 제공 비엔날레 조직위

2020 부산비엔날레 ·2020 여수국제미술제


코로나19는 문화 예술계 캘린더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아예 온라인 방식으로 전환하는 승부수를 띄우기도 하지만 상당수의 행사가 취소·연기되면서 일정 자체가 뒤죽박죽이다. 예컨대 베니스비엔날레는 전통적으로 짝수 해에 건축전, 홀수 해에 미술전을 열지만 올해 행사가 내년으로 미뤄지면서 이 순서가 뒤바뀌었다. 우리나라 미술계도 비슷한 처지다. 짝수 해에 개최되는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해 굵직한 행사들이 내년으로 연기됐다. 하지만 팬데믹이라는 제약 속에서도 꿋꿋이 갈 길을 가겠다는 사례가 눈에 띈다. 야외 전시 위주인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지난달 말 막을 올렸고, 여수, 부산, 대전, 창원 등의 도시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뒤를 잇고 있다. 과연 위기는 새로운 발상, 그리고 기회를 빚어낼까?



Yeosu International
Art Festival

원래 세계 미술계에서는 홀수 해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더 큰 편이다. 여기에는 2년마다 열리는 글로벌 미술 잔치인 비엔날레가 큰 몫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유서 깊은 베니스비엔날레의 미술전과 현대미술의 수도로 통하는 뉴욕을 무대로 하는 휘트니비엔날레를 비롯해 주요 행사가 홀수 해마다 펼쳐져왔기 때문이다. 물론 해마다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가 단순한 ‘미술 장터’가 아니라 멀티 플랫폼으로도 인기를 누리고 있기는 하지만, 상업성을 배제한 커다란 담론의 장인 비엔날레의 무게감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언젠가부터 어디를 가나 크게 다를 바 없는 주제가 반복적으로 제시되고 참신한 시도를 느낄 수 없는 행사의 남발로 ‘진부하다’, ‘비엔날레 과잉’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고, 위상도 약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한국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10개가 넘는 지자체가 저마다 비엔날레를 운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동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아우르는 화두를 깊이 고민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담기에는 조직 내분이나 단기간의 준비 등 고질적인 문제가 자주 발목을 잡는다. 급조된 환경에 따른 빈약함, 혹은 산만함이 표출되기 일쑤이고 말이다. 그래도 나름의 노력은 계속되어왔고, 특히 짝수 해 가을은 ‘비엔날레의 계절’로 자리매김해왔다. ‘브랜드’에 가장 가까운 명성을 쌓아온 광주비엔날레, 모태를 따지자면 최장의 역사를 지닌 부산비엔날레, 메가폴리스의 장점을 품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렇게 우리나라 3대 비엔날레가 비슷한 시기에 잔치를 벌여왔다. 그런데 올해는 이 중에서 부산만이 예정된 일정대로 비엔날레를 소화하기로 해 이목이 쏠린다(9월 5일~11월 8일). 마침 상투적인 주제나 방식을 택하지 않아 기대를 받고 있던 터라 이번 기회에 부산비엔날레가 차별된 입지를 굳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올해 10회를 맞이한 2020 여수국제미술제도 면적이 넓고 개방성이 있는 박람회장을 활용해 한 달간의 일정을 펼친다(9월 4일~10월 5일). 온라인과 현장 콘텐츠를 모두 준비해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응한다는 코로나 시대의 비엔날레, 어떤 여정을 꾸려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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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국제미술제, ‘금기어’를 통해 세상을 곱씹어보다

‘작은 베니스’라 불릴 정도로 수려한 풍광을 지닌 해양 도시 여수. 2006년에 시작한 여수국제아트페스티벌은 비엔날레처럼 2년에 한 번이 아니라 해마다 한 달간 열리는데, 4만 명 넘는 관람객을 동원하며 지역의 활기를 북돋는 문화 예술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행사의 정체성을 보다 명확히 하는 차원에서 공식 한글 명칭을 여수국제미술제로 바꾸고 <해제解題: 금기어>라는 주제전을 내세웠다. 말 그대로 이 세상 금기어에 대한 작가들의 다양한 해석을 담고 있다고. “감염증이 세상을 덮은 세상에서 내 옆을 지나는 이가 ‘어깨만 스쳐도 인연’이 아닌 더러운 병균의 외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넘쳐나는 지금이다. 금기, 타자, 혐오 같은 것은 하나의 모습이 아니며 한 가지 이유에서 생성된 것도 아니다. 개인사와 사회, 사건, 역사적 입장과 해석에 의해 동일한 상황이 얼마나 다르게 이해될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것 또한 예술의 역할 중 하나다. 그런 만큼 상상하지 못한 다양한 언어와 이미지를 통해 나, 우리의 무지와 대면하도록 해야 한다.” 조은정 전시감독이 전하는 전시 의도는 우리가 처한 팬데믹 상황과 묘하게 잘 들어맞는다. 우리 일상을 파고든 금기어는 무엇일까? 조 감독은 이념을 의미하는 빨갱이, 빈부 격차에 대한 생태적 지적인 흙수저, 낙오자, 하위문화의 오타쿠와 퀴어, 여혐, 남혐, 심지어 아줌마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금기어는 보다 다양하고 복합적이라고 설명하며 “우리 삶을 옥죄는 것에 대한 인식,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응시할 때에만 진실이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주제전에는 국내외 작가 46팀이 참여했고, 유화, 한국화, 조각, 설치, 사진, 영상 등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다룬 작품이 선정됐다(여수 지역 작가 41명이 합류한 참여전도 있다). 독일의 사진 거장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가 평양 거리를 담은 작품이라든지 영국의 스트리트 아티스트 뱅크시(Banksy)의 회화와 영화, 캄보디아 작가로 서양이 보고 싶어 하는 동양의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얘기하는 흐베이 삼낭의 영상, 우리나라 조각가 류인(1956~1999)의 주요 작품 3점, 관람객이 금기어를 비누 블록에 적어볼 수 있게 한 설치 작품 등 다채로운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또 여수의 아픈 역사를 반영한 작품도 이목을 끄는데, 작고 네모난 천에 이름을 6백2개나 수놓은 판에 휴대폰 플래시라이트를 결합해 무덤도 없이 스러져간 이들을 기린 박미화의 ‘이름-플래시라이트’라든지 여수 지역에서 발설할 수 없는 금기어인 여순 사건을 완전히 반대 관점에서 바라본 2명의 시인을 다룬 신제현 X 김윤재의 ‘금기의 숲’ 등이 있다. 현장 관람은 네 곳의 공간에서 이뤄지며 한 번에 50명씩 2백 명이 동시 입장할 수 있다(www.yia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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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an Bienn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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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비엔날레, 도시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매혹적인 다중주
9월 5일 온라인으로 개막한 2020 부산비엔날레는 세부 계획이 발표될 당시부터 남다른 주목을 받았다. ‘불확실성 속 해법을 찾는 것도 의미 있는 경험이며 동시대 미술이 취해야 할 자세’라는 취지로 진행 의지를 밝혔고, 전시 방식도 신선한 구석이 있어서다.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 전시 제목이 암시하듯 이번 비엔날레는 문학에서 출발한다. 김혜순, 배수아, 박솔뫼, 편혜영, 김숨 등 한국 작가를 비롯한 다국적 저자 11명이 부산이나 도시를 소재로 탐정·공상과학소설 등 다양한 글을 썼고, 그렇게 태어난 10장의 이야기와 5편의 시를 묶은 문집이 시작점이다. 각각에 대해 시각예술가와 음악가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응답’했고, 34개국 90명 아티스트가 참여했다. 유일하게 시로 참여한 김혜순 시인의 ‘파트너’ 중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비앙카 봉디(Bianca Bondi)는 자가 격리까지 감수하면서 부산을 찾았다. 김 시인의 작품 5편 중 ‘고니’라는 시에서 영감을 받아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을 선보였는데, 흥미롭게도 그는 자신의 작업 대부분이 ‘읽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보통은 하나의 구절이 나머지에 영감을 주고 그것이 작품명이 되는데, 이번에는 하나의 시 전체를 참고해 진행한 첫 작업입니다.”
야콥 파브리시우스(Jacob Fabricius) 감독은 “인체에 비유한다면 문학이 뼈대, 시각예술은 장기와 뇌, 음악은 조직과 근육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문학, 시각예술, 사운드를 유기적으로 엮는 이 같은 방식에 대해 그는 10개의 피아노곡과 5개의 간주곡으로 구성된 무소륵스키의 작품 ‘전람회의 그림’(1874)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무소륵스키는 자신의 친구인 건축가이자 예술가 빅토르 하르트만이 남긴 그림 10점을 ‘소리’로 표현했는데, 이처럼 예술을 해석하고 다른 매체로 번역하는 접근법을 빌려왔다는 것. 또 심사를 통해 선발된 부산 시민들이 작품집을 낭송한 오디오 북을 제작한 시도도 바람직해 보인다. 전시 장소도 부산현대미술관, 원도심 일대, 영도 등 곳곳에 펼쳐져 있어 보물찾기 하듯, 탐정 놀이 하듯 도시의 역사와 거리와 문화를 즐기도록 하려는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물론 현장 투어는 코로나19 상황이 호전될 때 가능하지만, 야외에 설치된 작품들은 온라인 관람 기간에도 감상할 수 있다(원도심 일대의 주차 타워에 현수막으로 설치된 김희천의 ‘드릴’(2020),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 외벽에 설치된 노원희의 ‘거리에서’(1980), ‘말의 시작’(2015) 같은 작품이 그렇다).
부산비엔날레 조직위는 일찌감치 ‘언택트 관람’을 위한 단계별 전략을 짜뒀다고 한다. 그래서 전시 감독이 관람 포인트를 소개하는 온라인 투어와 웹으로 전시 공간을 살펴볼 수 있는 3D 입체 전시, 참여 음악가의 사운드스케이프, ‘시민 성우’의 오디오 북 등 다양한 언택트용 콘텐츠가 준비되어 있다. 사실 도시를 ‘읽고, 보고, 듣는’ 건 ‘랜선’으로도 가능하고, 어떤 면에서는 집중도가 높아지는 지점도 있다. 하지만 역시 전시 공간과 도시 구석구석을 활보하며 생생히 ‘느낄 수도’ 있어야 제대로 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터. 부디 그런 자유를 한껏 누릴 수 있는 안정된 시기가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www.busanbiennale.or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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