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과 남극, 쿠바 등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왕성한 활동을 펼쳐온 시각예술가 한성필 작가가 최근 평온한 안식을 누리면서 창조적 영감을 담뿍 받는 특별한 유럽 여행을 떠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어니스트 헤밍웨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찰스 디킨스 같은 대가들이 영감을 받은 이탈리아 마조레 호수와 프랑스 루아르 고성에 머물며 새로운 에너지를 얻은 것이다. 그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르네상스가 바로 이 미려한 두 곳에서 정교한 교집합을 이룬다는 것을 감지했다.
2 벨라 섬에 있는 보로메오 궁전에는 회화, 조각과 같은 컬렉션뿐만 아니라 독특한 문양의 정원과 분수까지 갖추어 놓았다.
이 호반 지역에서도 특히 경치가 빼어난 곳이 스위스의 로카르노(Locarno)와 이탈리아의 스트레사(Stresa)다. 매년 8월 초에 열리는 국제 영화제 개최지로도 잘 알려진 로카르노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도 유명한 도시다. 대표적인 예로 레오나드로 다빈치는 마조레 호숫가에 머물면서 새로운 창작 에너지를 담뿍 받았는데, 로카르노의 비스콘테오 성(Castello Visconteo)을 설계함으로써 그 에너지를 인상 깊게 발현했다.
밀라노에서 스위스 방향으로 숨 막힐 듯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호숫가를 따라 기차로 1시간 남짓 여행하다 보면 스트레사에 다다른다. 부유한 스위스와 이탈리아인들의 휴양지로, 아름다운 별장과 화려한 호텔이 자리한 이 도시는 런던부터 베니스까지 운행한 ‘오리엔탈 익스프레스’가 정차하던 역의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오리엔탈 특급 살인 사건(Murder on the Orient Express)>과 <007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 등 많은 소설과 영화의 배경지였기 때문인지 더욱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스트레사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추억이 배어 있기도 하다. <노인과 바다>가 헤밍웨이가 주로 머물며 영감을 받은 플로리다의 키웨스트와 쿠바를 배경으로 한다면, <무기여 잘 있거라>는 바로 이곳 스트레사와 마조레 호수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 탄생한 작품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전선에서 박격포에 부상을 입은 19세의 헤밍웨이는 1918년 9월 이곳 스트레사의 그랜드 호텔(Grand Hotel des Iles Borromees)에 머물렀고, 10년 뒤 그의 경험과 상상력에서 이 명작이 태어났다. 그는 스트레사와 마조레 호수를 “이탈리아 호수 중 가장 아름답다”라고 찬미하면서 몇 번씩 방문했다.
4 프랑스의 국왕 프랑수아 1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이곳 클로 뤼세 성에 머물도록 했다.
마조레 호숫가에서 가장 큰 섬인 마드레 섬(Isole Madre)은 전체가 식물원과 동물원으로 꾸며져 있으며 다양한 나라에서 들여온 알록달록 신기한 조류와 희귀한 식물로 가득 찬 곳이다. 또 과거 어업에 종사하는 어부들이 살았기에 ‘어부의 섬(Isola Pescatori, 페스카토리 섬)’이라고도 불리는 수페리오레 섬(Isola Superiore)은 아기자기한 골목과 식당, 숙소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처럼 호수 주변의 작은 마을들을 돌아보면 예전 귀족들이 살던 성이나 별장이 지금은 호텔로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몇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성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내면 오래된 마을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평안함을 만끽할 수 있다.
‘예술의 나라’라고 하면 대다수가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떠올릴 것이다. 15세기부터 꽃피운 르네상스 때문이다. 당시 이탈리아 북부는 밀라노공국, 피렌체공국, 베네치아공국, 만토바공국, 제노바공국 등 수많은 공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피렌체공국이 메디치 가문의 주도로 르네상스를 탄생시키고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예술가를 키워왔다면, 밀라노공국은 스포르차 가문의 지배 아래 경제적, 문화적 번영의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그들의 궁정을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스포르차 가문은 피렌체에서 활동하던 당시 30세의 다빈치를 초대해 후원했고, 이를 통해 그는 17년간 밀라노공국에서 30~40대의 젊음을 불태우며 ‘최후의 만찬’을 포함한 6점의 그림을 남겼다.
16세기 이후 국력이 약화된 이탈리아의 공화국 체제는 점차 와해됐고, 르네상스도 저물기 시작하지만 이 시기의 프랑스는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경제적으로는 중상주의 정책으로 근대 자본주의가 탄생했고, ‘지리상의 대발견’을 통한 부의 집중화가 이뤄졌으며, 정치적인 면에서는 봉건 영주들이 중립을 유지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를 손에 넣기 위해 원정을 떠난 프랑스 왕들은 풍부한 문화와 르네상스에 대한 경이를 느꼈다. 특히 르네상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랑수아 1세(Franc¸ois 1, 1494~1547)는 국운이 기울어가는 모국을 떠난 재능 있는 이탈리아 예술가, 학자, 건축가를 프랑스로 초청함으로써 자국에 르네상스를 이식하고 문화를 꽃피우는 밑거름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프랑스에서 가장 긴 강인 루아르 강을 따라 찬란한 역사와 문화가 솟아났다. 천혜의 자연으로 ‘프랑스의 정원’이라 불리는 이 일대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세운 아름다운 70여 개의 고성이 줄지어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루아르 계곡에 터를 둔 고성의 역사는 르네상스 문화에 대한 커다란 동경을 품었던 프랑수아 1세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중세에 방어용 성채였던 앙부아즈 성(Cha^teau d’Amboise)에 이탈리아 양식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화려한 연회를 위한 장식적인 성으로 그 성격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후 강가와 계곡에는 중세적 유산과 르네상스 양식의 뛰어난 조합으로 프랑스식 건축양식을 꽃피운 다양한 성이 들어섰다. 이 다양한 고성들은 저마다 독특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프랑스 동화 작가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의 경우에는 위세 성(Cha^teau d’Usee)의 낭만적인 풍경에 매료돼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창작했다고 한다.
6 마조레 호수에 위치한 프리노 성의 내부. 과거 성으로 쓰였던 이 건물은 지금은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로 사용되고 있다.
8 시농소 성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성의 내부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신비감을 선사한다.
유럽은 성(城)의 역사로 풀어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과거에 성은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이민족의 침략을 막아내는 군사적 공간이기도 했다. 이러한 성들이 르네상스의 향기와 어우러져 미적인 기쁨을 제공하는 곳으로 성격이 바뀌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많은 고성이 관광지나 호텔로 바뀌었지만, 그 안에 담긴 문화와 역사의 흔적은 아직까지도 살아 숨 쉰다. 필자는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통해 고성에 초대받아 2015년 7월에는 마조레 호수의 프리노 성(Castello di Frino)에, 9월에는 루아르 강가의 쇼몽 성(Cha^teau de Chaumont-sur-Loire)에 머물면서 작업할 기회를 가졌다.
다른 문화권과의 낯선 대면은 창작으로 재탄생된다. 다빈치가 그러했듯이 현대의 예술가들이 타 문화와 직접 충돌하는 노매드적인 도전을 하는 것도 아마 비슷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흔히들 동서양은 사고방식이 판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극(極)과 극은 통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유럽의 고성에서 생활하면서 개념적인 현대미술을 창조하는 것은 옛것을 연구해 새로움을 알아나가는 동양적인 사고인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발현하는 다른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고즈넉한 고성에서의 체류는 비단 예술가뿐만 아니라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예술의 향기를 통해 삶의 철학을 성찰하게 해주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