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아름다운 와이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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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06, 2016

글 이소영(<사진 미술에 중독되다>, <서울, 그 카페 좋더라> 저자)

건축가들도 와인을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 자하 하디드, 프랭크 게리, 노먼 포스터 등 스타 건축가들이 와이너리 건축에 뛰어들어 걸작을 남기고 있다.

명품 와인 생산뿐 아니라 와인 애호가들의 와이너리 여행과 이미지 업그레이드를 위한 세계 와이너리의 건축 작품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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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건축가들이 스페인으로 모이는 이유
스페인의 자랑거리는 요리와 디자인이다. 그 매력적인 요리와 디자인을 경험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여행 가는 사람들이 증가하거나, 건축가들이 와이너리 디자인에 참여하는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먼저 미국 출신이지만 스페인 북부의 랜드마크를 2개나 디자인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그는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 건축 디자인으로 스페인 북부 지방을 최고의 여행지 반열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이다.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인 마르케스 데 리스칼(Marque´s de Riscal)의 대표 카밀로 후르타도 데 아메자하(Camilo Hurtado de Ame´zaga)가 구겐하임 뮤지엄의 성공에 감동해 프랭크 게리를 와이너리로 초대했다. 프랭크 게리는 와이너리 건축에 참여할 의사가 전혀 없었으나, 카밀로 후르타도 데 아메자하 대표가 프랭크 게리가 태어난 해의 빈티지 와인을 선물하자 마음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프랭크 게리는 오래된 와인 창고에 43개의 객실을 갖춘 호텔을 만들었는데, 티타늄 강판으로 플라멩코 무희의 드레스가 물결치는 형상을 시각화한 외관이 인상적이다. 워낙 유명한 건축물이다 보니 브레드 피트 부부와 귀네스 팰트로 등의 스타들도 즐겨 찾고 있다. 이곳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순간은 포도밭으로 해가 떨어질 때 티타늄 지붕으로 반사되는 각양각색의 빛, 스위트룸 테라스에서 바라본 와이너리와 농장 풍경이다.
보데가스 포르티아(Bodegas Portia)는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디자인한 미래 지향적 건축물로 여행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언덕에 건축물을 올렸으며, 와인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소재인 철, 오크, 유리로 만들었다. 와인 숙성고와 저장고는 자연적인 경사면에 건축되었으며, 발효 공간은 이산화탄소를 최소 배출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혁신적인 건축 요소는 자연적으로 온도와 습도가 조절되는 와인 저장고와 수확철이면 중력을 거스르지 않고 최소한의 손상으로 포도를 운반할 수 있는 동선, 그리고 속이 들여다보이는 와인 셀러 등이다. 여행자를 위한 와인 숍의 가구까지 노먼 포스터가 디자인했는데, 높은 선반의 와인을 꺼내기 위한 사다리조차 아름답다. 리오하 지역의 보데가스 이시오스(Bodegas Ysios)는 스페인 출신 건축가이자 미술가인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가 설계한 유일한 와이너리 건축물로 명성이 높다. 파도가 출렁이는 듯한 건축물의 지붕은 바로 뒤의 바위산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와이너리 건축물 실내에서 바라본 천장의 나무 구조물들은 피아노 건반처럼 부드럽게 이어진다.
이외에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특유의 비정형으로 디자인한 R. 로페즈 드 에레디아 비나 톤도니아(R. Lopez de Heredia Vina Tondonia)와 스페인 건축가 J. 마리노 파스쿠알(J. Marino Pascual)이 디자인한 보데가스 안션(Bodegas Antion), 보데가스 다리엔(Bodegas Darien) 등도 매혹적이다. 카스틸로 페렐라다(Castillo Perelada)는 현대 건축가의 작품은 아니지만 미술가 살바도르 달리가 사랑한 와이너리이며, 유리공예품과 와인 박물관, 약 8만 권 이상의 도서를 보유하고 있는 스페인 최대 개인 도서관도 있어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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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 생테밀리옹의 혁신적 와이너리 건축 디자인
와이너리 여행만큼 낭만적인 것이 또 있을까? 와이너리 여행에서는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특급 와인과 작은 도시의 숨겨진 요리를 곁들일 수 있다. 소도시 특유의 넉넉한 인심과 소매치기나 도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움은 보너스다. 게다가 와이너리의 전통적 혹은 혁신적 건축물 역시 감상하는 재미가 톡톡하다. 프랑스 보르도에서라면 동화 속에서 보았던 작은 성 샤토(cha^teau)에서 프랑스 와이너리의 역사를 만끽하는 것도 큰 재미다. 하지만 톨레랑스(tolerance, 관용)을 중시하는 프랑스에서 전통만이 최고는 아니다. 최근에는 유명 건축가들이 오래된 와이너리에 첨단 건축물을 선사하고 있는데, 이것이 와인 애호가들의 와이너리 여행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만약 프랑스의 보르도 지역, 생테밀리옹에 위치한 샤토 라 도미니크(Cha^teau La Dominique)의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하게 된다면 창밖으로 펼쳐진 샤토 슈발 블랑(Cha^teau Cheval Blanc)과 샤토 레방질(Cha^teau L’E´vangile), 샤토 피자크(Cha^teau Figeac)의 포도밭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을 것! 보르도를 대표하는 그랑 크뤼 클라세 명품 와이너리들이 드넓게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만끽하는 만찬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새롭게 건축물을 디자인했는데, 1층 와인 저장고는 와인 컬러의 스테인리스 스틸로 마감했고, 북쪽 벽은 거대한 유리로 장식해 저장고가 들여다보인다. 2층에는 와인 컬러의 돌들이 인상적으로 펼쳐진 레스토랑이 위치한다. 날씨가 좋을 때는 야외 테라스에 앉아도 되는데, 푸짐하면서도 감각적인 음식마저 근사하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식사하러 온 와인 메이커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눌 수 있으니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행운의 레스토랑이 될 듯. 샤토 라 도미니크가 와인 컬러의 화려하고 모던한 건축물이라면, 바로 옆에 위치한 샤토 슈발 블랑은 구릉을 따라 흐르는 우아한 곡선미가 매력적이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Pritzker)상 수상자인 크리스티앙 드 포르장파르크(Christian de Portzamparc)가 디자인했는데, 화이트 콘크리트로 만든 부드러운 곡선의 와인 셀러가 인상적이다. 2013년, 샤토 슈발 블랑의 건축물은 유명한 국제 건축상인 시카고 아테나에움 건축 디자인 뮤지엄(The Chicago Athenaeum Museum of Architecture and Design)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역시 인근에 위치한 샤토 포제르(Cha^teau Fauge`res)는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의 모던한 건축물로 잘 알려져 있다. ‘2013 최고의 와이너리 여행상(Best of Wine Tourism Award 2013)’을 수상했을 정도로 건축물과 인근 풍광의 조화가 아름다우며, 그랑 크뤼 클라세답게 와인 애호가의 예약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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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디자인이 뛰어난 와이너리의 경제적 가치가 높다
죽기 전에 꼭 한번 방문할 만한 디자인의 와이너리를 소개하다 보니, 소위 명품 와이너리들이 건축물에도 관심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영국 디자인 카운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요 디자인상(IF, IDEA, 레드닷) 수상 경력이 있는 기업이 주가 역시 상대적으로 높았다. 주가를 결정짓는 데는 디자인뿐 아니라 국내외 정세와 경기, 사회적 사건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디자인 경쟁력이 높은 기업일수록 성과가 높다는 가설은 확률적으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디자인에 투자하면 소비자의 관심을 높일 수 있기에, 와이너리들이 건축 디자인에 투자하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국 와이너리의 가치와 건축 디자인 역시 이러한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미국 나파 밸리 프리미엄 와인의 대표인 도미누스 이스테이트(Dominus Estate)는 스위스 건축가 헤르조그 & 드 뫼론(Herzog & de Meuron)의 건축물로 유명하다. 헤르조그 & 드 뫼론은 화력발전소를 개조한 영국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 2008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 등을 설계한 듀오 건축가로, 예술적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와이너리의 저장고는 거대한 돌망태로 이루어진 반투명한 벽이 하이라이트인데, 나파 밸리의 현무암을 잘게 쪼개 일반적 돌망태보다 큰 구멍을 낸 것이 특징이다. 그 때문에 돌 사이 틈으로 나오는 햇빛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공기 순환에 효율적이다. 도미누스 와이너리는 엄격한 예약에 의해 소수에게만 공개되는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니 참고할 것. 나파 밸리 오퍼스 원(Opus One)은 미국 건축가 스콧 존슨(Scott Johnson)이 디자인한 것이다. 마치 자연의 한 부분인 것처럼 건축물은 포도밭 중앙에 자리 잡고 있으며, 장엄한 디자인은 풍경을 거스르지 않는다. 건축물은 현대적이면서도 고전적인데, 화려하지 않은 보석처럼 우아하다. 계곡 아래를 따라 흐르는 아름다운 복도의 전망과 외관과 대조를 이루는 18세기 프랑스 스타일의 인테리어, 스콧 존슨이 직접 디자인한 근사한 가구와 벤틀리 엔지니어링 컴퍼니가 제공한 과학적 냉각 시스템은 온도와 습도 조절에 최적이다.
한편 소노마 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와이너리 건축물은 윌리엄스 셀럼(Williams Selyem) 와이너리다. 2011년 AIA 아너 어워드 포 디자인 엑셀런스(AIA Honors Award for Design Excellence)를 수상했으며, 건축 사무소 다르크 그룹(D. Arc Group)이 설계했다. 와인 양조에 사용하는 재료를 재활용해 건축 소재로 삼았는데, 와인을 보관했던 삼나무 올드 배럴로 벽과 문 등을 만들어 공간 전체에 와인 향기가 감돈다. 와이너리의 역사를 현대 건축물에 그대로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최고의 피노 누아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와이너리답게 태양광을 이용해 에너지 소비와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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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 아르헨티나 와이너리 기행을 위한 조언
인기로 치자면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 와인도 다른 와인 생산국에 뒤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에 여행 간다면 와이너리 투어를 절대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키안티 지역에 위치한 카스텔라레 디 카스텔리나(Castellare di Castellina)의 와인 메이커 파올로 파네라이(Paolo Panerai)는 건축가 렌초 피아노(Renzo Piano)와의 우정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운 와이너리 로카 디 프라시넬로(Rocca di Frassinello)를 완공했다. 렌초 피아노는 파리 퐁피두 센터, 일본 간사이 공항 디자인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건축가로, 최근 우리나라에서 KT 광화문 신사옥을 선보이기도 했다. 로카 디 프라시넬로 와이너리 건축물은 슬림한 철제 프레임과 섬세한 유리 장식의 조화가 돋보인다. 와이너리 건축물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숙성고를 지하에 만들어 자연적으로 온도와 습도 조절이 가능하게 했으며, 2천5백 개의 오크 통을 계단식으로 쌓아 작은 극장처럼 만들어 그곳에서 공연과 만찬도 가능하게 했다. 카스텔라레는 1970년대 말 파올로 파네라이의 소유가 된 이래 산조베토라는 토착 품종의 발견과 그에 대한 투자와 연구 덕택으로 품질 좋은 키안티 클라시코의 생산자로 알려졌다. 또 친환경 와인 제조자로서 제초제와 화학비료의 사용을 금지하며, 멸종 위기 동물 보호에도 앞장서고 있다. 조각가 산드로 키아(Sandro Chia)가 소유한 토스카나 지역의 카스텔로 로미토리오(Castello Romitorio)와 미술가 잔카를로 페라리스(Giancarlo Ferraris)와 협업하고 있는 피에몬테 지역의 와이너리 미켈레 키아를로(Michele Chiarlo)도 기억해두자. 카스텔로 로미토리오에는 곳곳에 산드로 키아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미켈레 키아를로는 종탑과 조경, 아트 파크, 아트 레이블로 유명하다.
아르헨티나의 와이너리 중 보데가 디아만데스(Bodega DiamAndes)는 ‘최고의 와이너리 여행상(Best of Wine Tourism 2011)’ 등을 수상한 바 있는 매력적인 곳이며, 리조트 산업도 병행하는 오포우르니에르(Ofournier)는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특이한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이제 2016년의 새로운 여행 계획을 준비하며, 와이너리를 리스트에 올려야 할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 무미건조한 이성과 감성에 문화 충격을 선사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라면, 전통과 현대의 노하우가 집약된 와이너리 건축물 투어만큼 근사한 테마는 아마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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