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ield Embroidered with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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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03, 2022

글 고성연

[르포] 하우저앤워스 아트 센터를 가다① Somerset


‘그림 같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전원(田園) 풍경을 배경으로 아기자기한 예쁜 마을이 많기로 유명한 영국 남서부 서머싯(Somerset) 카운티.
서머싯에서는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온천 휴양지 바스(Bath)가 손꼽히는 ‘스타 도시’지만, 미술 애호가라면 아마도 ‘버킷 리스트’에 다른 후보지를 올려뒀을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높다. 목가적인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땅에 자리한 브루턴(Bruton)이라는 아담한 마을이다. 영국인들에게 도시와 동떨어진 곳을 찾아 떠나는 ‘슬로 리트릿(slow retreat)’ 여행지로 꽤 인기가 있지만 필자에게는 오랫동안 갈망해온 진짜 ‘목적지’가 따로 있었는데, 다름 아닌 하우저앤워스 서머싯(Hauser & Wirth Somerset)이다. 단순한 상업 갤러리를 넘어선 독특한 복합 모델을 제시한 하우저앤워스의 아트 센터 1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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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저앤워스(Hauser & Wirth)’라는 세계적인 갤러리 브랜드로 인해 덩달아 유명세를 얻게 된 브루턴(Bruton). 인구가 약 3천 명에 지나지 않지만 특유의 아름다운 풍광과 미식으로 이미 자국민들에게는 은근한 사랑을 받아온 작고 한적한 마을이다. 지난 6월 초, 브루턴으로 향하는 길은 여럿이지만 필자는 런던 패딩턴 역에서 기차를 탔다. 시간대를 잘 고르면 한 번만 갈아타고 2시간 내에 브루턴 역에 도착한다. 그리고 무거운 짐만 없다면 기차역에서 도보로 10분 정도면 하우저앤워스 서머싯에 다다를 수 있다. 친절하게 놓인 팻말을 따라 걷노라면 동화 같은 마을 풍경을 배경으로 초여름의 싱그러운 녹음으로 빛나는 산울타리가 길게 펼쳐진 산책길이 나온다. 이윽고 풀밭 위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예술 농장’의 자태가 드러난다. 실제로 하우저앤워스 서머싯이 자리 잡은 땅은 18세기 중엽에 지은 더슬레이드 농장(Durslade Farm) 부지로 쥘리에트 비노슈와 조니 뎁 주연의 영화 <초콜릿> 촬영 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마침 주말인 데다 새로운 전시가 막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꽤 북적거렸다. 영국이 낳은 추상 조각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헨리 무어(1898~1986) 전시 <Henry Moore. Sharing 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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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색조 ‘예술 농장을’ 무대로 자연과 조응하는 예술
우선 갤러리 부지에 들어서면 시선을 압도적으로 잡아끄는 하얀색 대형 조각 ‘The Arch’(1963/69). 6m 넘는 높이의 거대한 조각이 자아내는 오라를 느끼며 갤러리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5개의 전시실에 걸쳐 60년 넘는 작가의 커리어를 수놓은 다양한 작품이 관객을 맞이한다. 신석기시대의 거석기념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스톤헨지(브루턴에서 자동차로 1시간 내 거리에 있다)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무어의 스케치와 석판화부터 청동, 섬유유리, 돌 등 다양한 소재의 크고 작은 조각 작품들, 그리고 이번 전시에 직접 참여한 작가의 딸 메리 무어(Mary Moore)가 부친과의 추억에 얽힌 오브제 등 각종 소장품을 모아놓은 정감 어린 섹션까지…. 사실 헨리 무어는 갤러리 소속 작가가 아니지만 하우저앤워스는 이렇듯 경계를 넘는 다채로운 방식의 협업을 기꺼이 시도해왔다(이곳에 머무는 레지던시 작가 역시 마찬가지로, 하우저앤워스 소속일 필요는 없다). 이렇게 갤러리 내부 투어를 마치면 숨을 한 차례 들이켜고 마음을 다잡아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갤러리 건물과 서점 등으로 둘러싸인 안쪽 뜰을 통과해 다시 밖으로 향하면 명성 자자한 ‘아우돌프 가든(Oudolf Field)’이 무어의 야외 조각전과 함께 기다리고 있어서다. 네덜란드 조경 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Piet Oudolf)의 솜씨로 여러해살이식물이 저마다의 맵시를 뽐내며 자연스럽고도 묘한 조화를 발하는 이 실외 정원이 아주 완만한 경사를 타면서 길게 펼쳐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지만 결코 요란스럽지 않다. 먼 길을 찾아온 바쁜 여행자에게도 잠시 속도를 늦추고 쉬어 가라고 등을 토닥여주는 듯한 포근함이 깃들어 있다. 정원 산책길 끝에는 칠레 건축가 스미한 라딕(Smijan Radic´)의 타원형 파빌리온이 다정한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기도 하다. 아트 토크 등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다목적 공간으로 쓰이지만 비어 있을 땐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하는 놀이터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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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커뮤니티와 다각적 연대를 쌓아가는 공유 플랫폼

2014년 여름, 영국 아티스트 필리다 발로(Phyllida Barlow) 전시 <GIG>와 피트 아우돌프의 조경 미학을 담은 드로잉 전시 <Open Field>로 대중에 문을 활짝 연 이래 하우저앤워스 서머싯에는 9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아왔다. 단지 전시만 보러 오는 인파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아우돌프 정원이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더슬레이드 농가를 ‘아트 호텔’로 탈바꿈한 게스트하우스, 갤러리와 오랜 인연을 지닌 작가 집안의 성을 딴 로스 바 앤드 그릴, 농장 부지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를 파는 상점 등의 ‘하드웨어’가 깔려 있을뿐더러, 전시와 연계된 프로그램을 비롯해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는 바비큐 파티 같은 ‘콘텐츠’도 알차게 구비했다. 지역의 학교 등을 대상으로 꾸준히 진행해온 워크숍 등 학습 프로그램도 빼놓을 수 없다. 개관 이래 참여한 크고 작은 교육기관이 무려 8백50곳이다. “하우저앤워스가 들어온다고 했을 때 대부분 얼마나 버틸까 하는 반응이었는데, 벌써 8년이 됐네요. 지금도 잘 굴러가고 있고요.” 브루턴의 한 주민이 필자에게 건넨 말이다. 하우저앤워스의 공동 창립자 마누엘라(Manuela)와 아이반 워스(Iwan Wirth) 부부는 이 전원 마을의 매력에 빠져 일찌감치 가족 단위의 이주를 감행했고 버려지다시피 했던 더슬레이드 농장 부지도 샀지만 처음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열망이 향하는 방향만큼은 확실했다. ‘갤러리, 아티스트 스튜디오, 음식(식문화), 교육’. 이런 요소들이 지역 공동체와의 끈끈한 유대를 쌓아가며 어우러지는 ‘아트 센터’의 개념은 그렇게 영글어갔다.








[르포] 하우저앤워스 아트 센터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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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SOMERSET_a field Embroidered with Art 보러 가기
03. LOS ANGELES_Welcome to the Arts District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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