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ersive Art & Participatory Muse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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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04, 2019

글 고성연

확장하고, 참여하고, 몰입하게 만들다

흔히 현대미술을 가리켜 난해한 데다, 친절하지도 않다고 한다. 

물론 모든 관람객의 기호와 이해 수준이 비슷할 수는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듯 배경지식이나 해당 작가에 대한 정보, 기획자의 의도 등을 파악할 수 있어야 ‘얻는 것’도 많아진다. 첫 장을 어떻게든 견뎌내면 비로소 자석처럼 빨려 들어가는 고전소설처럼 때로는 약간의 인내를 바탕으로 한 노력이 필요한 작품 세계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시 방식이나 내용 면에서 지나치게 ‘공급자’ 중심이라 관람객과 동떨어진 듯한 콘텐츠가 상당수 미술관과 갤러리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콘텐츠의 독창성이나 수준보다 모객이 중요한 나머지 ‘인스타그램 스폿’에 제일 신경 쓴 티가 역력히 나는 전시 공간을 바라보는 것도 씁쓸하다. 관람객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참여적인 경험을 선사하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채워가는 플랫폼. 완성형은 아닐지라도 그러한 시도를 꾀하는 작가와 전시장에 눈길이 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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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원하고, 성공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은 전시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뉠 듯싶다. 피카소, 마티스, 고흐 같은 ‘올드 마스터’든 데이비드 호크니처럼 주가 높은 동시대 슈퍼스타든 ‘브랜드’를 내세운 블록버스터 전시, 그리고 참신한 감각과 실력으로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선사하는 창의적 전시. 그런데 세계 유수 미술관에 흩어져 있는 원화를 한데 모으는 블록버스터 전시를 기획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작품은 잘 빌려주지도 않을뿐더러 웬만한 기관에서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자금력과 네트워크를 필요로 한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로 꼽히는 빈센트 반 고흐가 생의 마지막을 지냈고, 그와 동생 테오의 무덤도 자리한 파리 근교의 마을 오베르쉬르우아즈(Auvers-Sur-Oise)에 간 적이 있다. 짧은 생애였지만 ‘열일’ 했던 고흐는 이곳에서도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애석하게도 마을 어느 곳에서도 그의 그림 한 점을 볼 수 없다. 작품에 영감을 주었거나 소재가 되었던 장소에 복제본이 걸려 있을 따름이다. 고흐가 이 마을로 오기 전에 머무른 남프랑스에 가봐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획전을 여는 미술관도 있기는 하지만, 아주 드물다(고흐 컬렉션은 암스테르담, 파리, 뉴욕 등 주요 도시의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생전 단 한 점의 그림을 팔았던 고흐인데, 지금은 ‘너무도 귀하고 비싼 당신’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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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 ‘불멸의 화가’ 고흐의 삶의 여정을 따라가보는 관객 몰입형 전시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다>가 지난 8월 말까지 서울 우정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이 제작을 맡았으며, 3D 복제 특허 기술로 고흐의 대표작을 실물처럼 재현해 물감의 질감이나 두께 등을 직접 만지고 느낄 수도 있는 한정판 ‘뮤지엄 에디션’이 이목을 끌었다. 이미지 제공: 마스트 엔터테인먼트 2, 4 비가 쏟아지지만 관람객은 비에 젖지 않는다는 콘셉트로 지난 2012년 런던에서 첫선을 보인 이래 뉴욕, 상하이 등을 거쳐 최근 부산현대미술관에 상륙한 아티스트 듀오 랜덤 인터내셔널의 설치 작품 ‘레인 룸(Rain Room)’. 랜덤 인터내셔널의 <아웃 오브 컨트롤>전은 내년 1월 27일까지 열린다. 4번의 인물은 부산을 찾은 작가 플로리안 오르트크라스(Florian Ortkrass). 이미지 제공: 부산현대미술관 5 부산 해운대 센텀시티에 최근 문을 연 미디어 아트 미술관 뮤지엄 다:(Museum DAH:). 무려 8천만여 개의 초고화질 LED 발광다이오드를 약 826m2(2백50평) 규모의 공간에 설치해 관객에게 놀라운 풍경을 선사한다. 현재 개관전 <완전한 세상>과 김지희 작가의 개인전이 진행 중. 이미지 제공: 뮤지엄 다:.

전시 콘텐츠의 확장성을 엿보다, 고흐를 ‘공유’하는 방법
강력한 문화 아이콘이 된 고흐에 대한 수요가 신드롬 수준으로 높은 오늘날, 그 갈증을 어느 정도 채워줄 흥미로운 대안이 등장했다. 그중 하나는 얼마 전 서울 우정아트센터에서 막을 내린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다>라는 ‘체험형 전시’. 처음에는 흔히 그림이나 영상을 활용한 미디어 아트 전시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꽤 신선한 요소를 품고 있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의 아카이브와 기술로 작가의 예술 세계를 ‘오감’으로 다채롭게 체험할 수 있다는 게 그 차이점. 반 고흐가 겪은 삶의 여정을 영화 세트처럼 6개 테마로 구성한 점도 흥미롭지만, 릴리포그라피라는 특허 기술 등을 활용해 실물 크기는 물론 작가의 생동감 넘치는 붓 터치와 물감의 질감, 두께를 그대로 살린 ‘뮤지엄 에디션’이 이목을 끌었다. 대다수 복제본과 달리 진품과 놀랄 정도로 닮은 이 한정판 에디션은 고흐의 유화 중 ‘해바라기’, ‘꽃 피는 아몬드 나무’, ‘추수’ 등 대표작을 골라 각각 2백60점만 제작했는데, 한국 전시에는 8점을 선보였다(몸소 만지고 느껴볼 수 있어 인기 만점이었다). 캔버스 뒷면도 원본과 똑같이 만들어 3D 프린팅 기술의 진보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이 뮤지엄 에디션은 자신의 작업을 판화로 복제해 많은 이들이 볼 수 있게 하고 싶어 했던 고흐의 유지를 21세기적으로 반영한 결실이라고. 이외에도 공중에서 손을 휘휘 저으면 마치 그의 붓질처럼 채색하는 느낌을 주는 디지털 캔버스, 10년에 걸쳐 창작한 그의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액자형으로 모아놓은 미디어 월(따로 설치된 터치스크린을 활용하면 각각의 작품 정보를 일일이 접할 수도 있다) 등 체험 요소를 골고루 갖춘 이 전시는 앞서 스페인, 중국에서도 열렸다.
콘텐츠를 결이 다른 매력으로 확장한 사례로는 폐쇄된 체석장의 커다란 석회암을 캔버스 삼아 멀티미디어 쇼를 펼치는 ‘빛의 채석장(Carrie`res de Lumie`res)’을 꼽을 수 있다.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레 보드프로방스에 자리 잡은 이곳은 근현대미술사를 수놓아온 거장들의 작품 이미지를 우아하고도 강렬한 음악의 선율 속에 7,000m2 면적의 채석장 바닥, 벽, 천장 등에 투사해 마치 몽환적인 춤을 추는 듯한 광경을 자아내는 명소로, 프랑스 기업 컬처스페이스가 운영한다. 아미엑스(AMIEXⓡ)라는 미디어 아트 기술 덕에 가능한 이 몰입형 전시는 해마다 수십만 명의 인파를 끄는데, 지난해 말 국내 기업 티모넷이 제휴해 제주 성산에 ‘빛의 벙커’라는 전시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현재 레 보드프로방스와 파리에서는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Van Gogh_Starry Night)>전, 제주에서는 <빛의 벙커: 클림트>전이 각각 열리고 있다. 이 역시 원작의 향연은 아니지만 ‘몰입 체험’의 정수를 담아 21세기다운 콘텐츠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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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적인 관객 참여형 전시로 몰입하게 하다
안 그래도 요즘 미술을 둘러싼 전시 콘텐츠 세계에서는 ‘몰입형’, ‘체험형’, ‘관객 참여형’ 같은 단어가 꽤 빈번히, 눈에 띄게 등장한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사례들처럼 첨단 기술을 활용한 미디어 아트, 그리고 관객이 작품을 만지거나 조작을 하면서 오감을 자극받게 하는 설치 작품 등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최근 부산 해운대 센텀시티에 들어선 뮤지엄다:(Museum DAH:) 역시 미디어 아트와 설치 작품 등을 통해 관객에게 몰입형 경험을 제공하는 미술관이다. 벽과 바닥, 천장 할 것 없이 복층의 널찍한 ‘집’ 같은 공간에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미디어 아트의 세계를 즐길 수 있는 문화 예술 공간으로, 클림트의 명화 장면이 황홀하게 펼쳐진다. 그뿐 아니라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20세기 디자인사에 한 획을 그은 자신의 작품 ‘프루스트 체어’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 영상 등을 접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화려한 아르누보풍 가구가 놓인 공간에서 증강현실(AR)을 경험해볼 수도 있다. 이 공간을 빚어낸 창업자 중 한 명이자 2인조 미디어 아티스트 팀 꼴라쥬 플러스의 일원인 장승효 대표는 ‘삶은 예술’이라는 명제를 염두에 두고 삶의 축소판인 일상의 집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관객이 ‘체험’ 수준을 넘어 전시에 ‘참여’하는 경우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다. 예컨대 관람객이 영상 방명록을 남길 수 있는 키오스크가 미술관에 놓여 있다고 상정할 때, 전시를 평가하는 별점을 매기거나 자기 의사를 표현한 영상을 남기는 소극적인 수준도 있고, 스스로가 작품의 일부가 되고 콘텐츠를 창조해내는, 훨씬 더 적극적인 ‘기여’ 유형도 있다. 오스트리아 작가 에르빈 부름(Erwin Wurm)의 ‘1분 조각’이라는 작품이 좋은 예다. 간단한 지시 사항을 안내받은 관람객은 60초 동안 자신이 원하는 고정 자세를 취해 ‘살아 있는 조각’이 되어볼 수 있다. 개개인이 작품도 되고, 전시를 이루는 요소도 되는 셈이다. 하지만 ‘참여’라는 요소 자체가 미덕은 아니다. 작가와 전시 기획자의 창의적이고 세심한 ‘설계’ 없이는 콘텐츠의 핵심과는 별 상관도 없는 의미 없고 질 낮은 콘텐츠로 뒤죽박죽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또 <참여적 박물관>이라는 책을 쓴 니나 사이먼이 말했듯 문화 기관에 대한 관객의 참여는 최소한 1백 년 이상 오래된 논의일 테니, 새로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진화한 사례들은 있다. 최근 관람객이 체험도 하고 참여도 하는 전시 콘텐츠로 지구촌에서 화제가 된 ‘레인 룸(Rain Room)’이 부산에 상륙했다. 을숙도에 자리한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지난 8월 15일 시작된 아티스트 듀오 랜덤 인터내셔널(Random International)의 <아웃 오브 컨트롤(Out of Control)>이라는 전시에 포함된 설치 작품인데, ‘비가 쏟아지는 방에 들어가 거니는데, 젖지는 않는’ 묘한 경험을 선사한다. 카메라에 장착된 센서 덕분에 비 내음도 나고, 빗줄기도 쏟아지지만 실제로 거의 젖지 않는다(단, 빨리 걸으면 안 된다). 작가 중 한 명인 플로리안 오르트크라스(Florian Ortkrass)는 부산에서 개최된 기자간담회에서 “반짝 떠오른 아이디어로 출발해 실제로 첫 프로토타입을 내놓는 데는 4년가량 걸렸다”면서 “그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2012년 영국 바비칸 센터를 필두로 뉴욕, 상하이, 로스앤젤레스 등을 거쳐 인기를 모았기에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은 충분히 뒤따르지 않았나 싶다(‘레인 룸’은 동시 관람자 수가 제한되므로 인터넷 예매가 필수다). 디지털 시대의 정체성과 ‘통제’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전시지만, 아무런 선입견 없이 방문해달라는 게 작가의 부탁이다. 내년 1월 27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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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꼭 따분하지만은 않잖아!
부산현대미술관은 지난달 5개월에 가까운 전시 여정을 끝낸 <마음현상: 나와 마주하기>라는 전시에서도 참여적 콘텐츠의 괜찮은 예를 남겼다. 타자기에 ‘사랑 고백’이든 ‘실연의 사연’이든 몸소 남길 말을 타이핑해서 종이로 길게 뽑아내기도 하고, 작은 공간에서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누군가를 대상으로 ‘사과(apology)의 글귀’를 적고 구멍으로 그 종이를 넣을 수도 있는(‘비밀 유지’ 차원에서 문서는 바로 분쇄기로 향한다) 참여적 작품이 일상적이면서도 잔잔한 재미와 여운을 주는 전시였다. 상설전보다는 기획전을 주로 꾸리는 부산현대미술관은 오늘날 끊임없이 다른 모습을 선보이는 기획 공간으로서의 미술관, 다시 말해 ‘가변적 플랫폼’의 면모를 더 짙게 드러내고 있다. 최근 부담스럽지 않고 즐거운 참여를 이끌어내면서도 진중한 고민거리, 담론의 씨앗을 던져주기도 하는 모범 사례로는 대만의 ‘작지만 강한’ 미술관인 타이베이 현대미술관(MOCA Taipei)을 꼽고 싶다. 지난 봄부터 여름까지 펼쳐진 이란 전시를 예로 들자면, 이 미술관의 마케팅 담당자가 참여해 문화 기관 뒤에서 일하는 이의 고충을 유머러스하게 담아낸 작품도 있고, 이전 전시에서 쓴 물품과 재료를 바탕으로 온갖 소리를 내는 다양한 형태의 도구를 전시한 작품도 있는데, 은근히 미소를 유발하면서도 기발함에 감탄하게 만든다. 후자의 경우 언뜻 그냥 도구를 늘어놓은 듯싶지만, 사실 이 ‘깜찍한’ 악기들은 갖가지 소리를 내므로 관람객이 원하면 빌려 자신만의 ‘정치적 항의’에 쓸 수도 있다(물론 돌려줘야 한다). 관람객이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의미’를 발하는 작품인 데다, 미술관과 ‘공유 경제’를 실천할 기회인 셈이다. 이렇듯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사회나 문화를 드러낼 수 있는 플랫폼을 꾸리고 전시를 설계하는 것이야말로 동시대 미술의 중요한 권리이자 의무, 그리고 덕목이 아닐는지.

6, 7 제주 성산의 문화 예술 명소로 자리매김한 ‘빛의 벙커’. 세기를 초월한 명장들의 작품을 환상적인 몰입형 콘텐츠로 빚어낸 멀티미디어 전시 공간. 클림트, 훈데르트바서, 에곤 실레 등 오스트리아 거장들이 선보이는 전시가 오는 10월 27일까지 열린다. 8 덴마크 3인조 작가 그룹 슈퍼플렉스의 개인전 <우리도 꿈속에서는 계획이 있다>가 진행 중인 국제갤러리 부산점 풍경. 관객 참여형 전시는 아니지만 ‘Free Beer’라는 작품은 ‘오픈소스 맥주’에 대한 개념을 바탕으로 해 흥미롭다. 체코 양조 전문가의 레시피와 브랜딩 요소를 누구나 실제로 ‘공유’할 수 있다(www.freebeer.org).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9 타이베이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됐던 카롤리나 브레굴라(Karolina Bregula)의 작품 ‘Instruments for Making Noise’. 관람객들은 이 창조적 도구들을 빌려 ‘정치적 항의’를 위해 사용하고 돌려줄 수 있다. 이미지 제공: MOCA Taipei 10 부산현대미술관 기획전 <마음현상: 나와 마주하기>전에서 선보인 박혜수의 ‘실연(失戀)수집’. 관객은 자신의 실연을 타자기로 적을 수 있다. 이미지 제공: 부산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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